몰라볼 뻔했다. 까만 헬멧, 짙은 선글라스, 두꺼운 금속 펜던트를 목에 걸고 요란한 할리데이비슨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겨우 입매 하나만 보고 알았다. 그가 김종열 전 하나금융지주 사장(60)이라는 것을.

김 전 사장은 지난 1월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 했다. 그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듬직한 오른팔’이었다. 다음 회장감으로 그를 거론하던 이들이 많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던지고 떠났다.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만 남아 있다.

김 전 사장은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기 위해 지난 4월 2종 소형 원동기면허를 땄다. 지난달 구입한 애마는 할리데이비슨의 2012년 신모델 ‘다이나 스위치백’. 1690㏄짜리 남성적인 면이 강한 모델이다. 가격은 2600만원 정도. 애칭은 ‘실비아’다. “우리 와이프 세례명”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략적으로 할리데이비슨을 선택했다. “뭘 해야 사람들에게 ‘요즘 이거 한다’고 말하기 좋을까 고민했죠. 골프 싱글이 될까 했는데 은행원은 보기 플레이어가 적당하다는 생각에 그만뒀고, 마술을 배워 요양원을 돌까 했는데 뜻은 좋지만 조금 심심해 보였어요. 할리, 좋잖아요. 자유로운 남자의 영혼! 로망!”

김 전 사장은 짓궂게 웃었다. “은행원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정말 ‘보여주기’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랬다면 손목이 저리고 팔이 굳도록 350㎏짜리 오토바이와 씨름하며 진부령 한계령 미시령을 넘어다니느라 고생하지는 않을 터이다.

“고급차 에쿠스를 타고 다니면 시원하고 편합니다. 하지만 창문 밖으로 무엇을 볼 때하고 할리를 타고 공기를 뚫고 달리는 것은 달라요. 냄새가 다르고 촉각이 다르고, 심지어 매미 울음은 짙은 갈색이라는 식으로 소리에서 색깔을 느끼는 공감각이 가능하죠.”

그는 하나금융 고문 자격으로 삼성동에 사무실을 하나 두고 있다. 뉴스를 체크하는 오랜 버릇도 버리지 않은 듯했다. 최근 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이나 가산금리로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비판을 받는 데 대해 “은행원이 이렇게 도둑놈, 사기꾼 취급을 받은 적은 없었다”며 억울해했다. “좀스러울지는 몰라도 그렇게 사익만 추구하는 집단은 아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통합과 관련해선 “내가 있었다면 당장 통합 작업을 시작해서 3개월마다 진도 체크해 가며 공격적으로 할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다 비빔밥 같은 건데…. 하나은행이 다 그렇게 섞인 조직 아닙니까.”

다시 할리로 돌아갔다. “아내를 태우고 싶은데 잘 안 타려고 하네요. 탈 때마다 20만원씩 준다고 약속하고, 헬멧이랑 스커트도 예쁜 오렌지색으로 사 놨는데….” 김 전 사장은 이번 주말 대관령으로 2박3일 여행을 떠난다. 그가 할리로 앞장서면 아내와 처남이 자동차로 뒤따르는 여행이다. 연말엔 제주도에 가고, 내년엔 일본과 호주 등으로도 떠날 예정이다. 금융계로 돌아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린 단순하니까.” 싫다는 뜻이었다. ‘영영 안 돌아온다는 얘기는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건 또 묵묵부답이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