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과 옥수수 등 국제 곡물가격 흐름이 심상치 않다. 올해 말께는 2008년보다 더 심한 ‘제2차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곡물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국내 물가를 덮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해외 옵션 거래를 통한 안정 대책을 검토하는 등 비상사태를 선언했지만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옥수수 재고율 사상 최저 예상

국제 곡물가격이 치솟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부터다. 우리나라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밀 선물 가격은 지난 20일 당 347달러(시카고상품거래소 최근월물 기준)로 전달 대비 43.8% 급등했다. 러시아 지역의 건조한 기후 탓에 밀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옥수수와 대두 가격은 이달 들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옥수수는 미국의 이상 고온 탓에 생산량 감소가 예상되면서 선물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20.6% 올랐다. 대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같은 기간 가격이 28.5% 치솟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올해 밀 생산량이 전년 대비 4000만(5.7%) 감소하면서 재고율이 1.9%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옥수수 재고율은 1.8%포인트 하락해 사상 최저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제 곡물값 변동은 국내 물가에 4~7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따라서 올해 말과 내년 1분기 식탁 물가는 ‘애그플레이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한석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달 국제 곡물가격을 적용하면 연말 제분은 지난 2분기 대비 27.5%, 식물성 유지는 10.6%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5일 업계와 긴급 간담회를 열고 선제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2008년에도 세계 곡물가 급등으로 국내 밀가루와 배합사료 물가가 치솟은 적이 있다”며 “이번 충격이 당시보다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08년 추진했던 사료·화학비료 수입자금 지원, 밀·콩의 할당관세 무관세화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파생상품 활용해 곡물가 잡는다

기후 변화가 잦아진 만큼 근본적인 물가 대책도 서두르고 있다. 선물시장을 통한 수입 곡물가격 안정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등에서 거래되는 밀·대두 등의 콜옵션(살 수 있는 권리)을 활용, 곡물을 매입하기로 한 뒤 가격이 오르면 그 이전 가격으로 실수요자에게 공급하는 방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멕시코에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주식인 옥수수 가격을 조절하고 있다”며 “하반기에 연구용역을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해외 곡물 유통망 확보 사업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미국의 산지 엘리베이터를 인수해 수입 곡물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적당한 매물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곡물시장이 활황에 접어든 요즘은 유통시설 매물이 나와도 고가일 가능성이 높다. 농식품부는 “요즘 같은 때 가장 절실한 것이 해외 유통망인데 확보가 더욱 어려워진 상태”라며 “당분간 신중하게 접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