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가 폐기해 달라며 맡긴 거액의 자기앞수표를 빼돌린 폐기물 처리업체 직원과 이렇게 빼돌려진 폐기수표를 훔쳐 사용한 10대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5일 폐기물 관리업체 직원 김모씨(49)를 불구속 입건하고, 권모군(13) 등 10대 청소년 7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2010년 12월 경기 남양주 농협에서 보관기간 경과 등으로 폐기를 위탁한 자기앞수표 수십만장 가운데 374장(4460만원 상당)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당시 수표 폐기 과정에 금융사 직원이 입회하지 않은 틈을 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김씨의 누나(57)가 보관하고 있던 수표 가운데 일부를 훔쳐 서울 송파구 일대 슈퍼마켓 등에서 사용한 혐의로 권군 등 7명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권군 등은 지난 6월 서울 문정동의 한 주차장에 세워진 김씨 누나의 차량에서 폐기수표 340만원어치를 훔친 뒤 슈퍼마켓에서 쓰고 거스름돈 120만원을 돌려받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수표를 폐기할 땐 금융사 직원 입회 하에 수표에 구멍을 뚫고 가로줄을 긋는 과정을 거쳐 파쇄해야 하지만 이번에 유출된 폐기수표의 경우 이런 규정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 김씨가 빼돌린 폐기수표에는 금융회사명이 적힌 부분에만 파란색 가로선이 그어져 있어 피해자들이 쉽게 속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 폐기수표는 현금자동지급기(ATM)기에도 문제없이 입금돼 실제로 일반 시민이 10만원권을 길에서 주워 자기 계좌에 입금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리 폐기되는 수표라지만 금융회사들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는 줄 몰랐다”며 “폐기 과정에서 보안이 좀더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