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경기도 과천의 한 커피숍. 바깥은 기온이 최고 33도까지 치솟는 ‘찜통’이었지만 커피숍 안은 오싹한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자리에 앉은 손님 중에는 소매가 긴 카디건을 입은 여성도 눈에 띄었다. ‘에어컨을 너무 세게 튼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커피숍 직원은 “손님들이 시원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냐’는 투였다.

이날 서울 명동도 사정은 비슷했다. 거리는 뜨거운 열기로 달궈져 있었지만, 명동 한복판을 지나는 도중 곳곳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다.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장사하는 가게가 그만큼 많았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문을 닫아놓으면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느냐”며 “다른 매장도 문을 열고 장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를 겪었고, 정부는 대대적인 ‘정전위기 대응훈련’까지 벌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전기 절약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축구선수 박지성과 아이돌 스타 수지를 내세워 TV에 전기 절약 광고를 내보내는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아무리 광고를 해도 국민들의 인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든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전력 수급 상황은 심각하다. 이날 예비전력은 오후 한때 비상상황 일보 직전인 400만㎾ 아래로 떨어졌다. 전력 공급능력 대비 여유전력의 비율도 안정권(10%)을 한참 밑도는 5%대에 그쳤다. 최근 장마가 마무리되고 무더위가 본격화되면서 전력 사용은 계속 늘어날 기미다. 정부는 당분간 예비전력이 400만㎾를 밑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전력 과소비를 막기 위해 에너지 사용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문을 열고 에어컨을 켜는 매장에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단속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결국 정부는 지난달 말 중단했던 수요관리에도 나섰다. 전기 사용이 많은 기업에 보조금을 줘 전력 사용량이 많은 시간에 조업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조치다. 여기에는 적잖은 돈이 쓰인다. 국민들이 실내온도를 1도만 더 올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에어컨을 조금만 덜 켠다면 아낄 수 있는 돈이 이렇게 새어나가고 있다.

조미현 경제부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