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식어버린 글로벌 경제 엔진…'포스트 브릭스'가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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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2000년대 경제, 美서브프라임에 '브레이크'
모건스탠리 신흥국 총괄 사장, 한국·체코·터키·폴란드 등 향후 10년 부상할 나라로 꼽아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루치르 샤르마 지음 / 서정아 옮김 / 토네이도 / 456쪽 / 2만원
모건스탠리 신흥국 총괄 사장, 한국·체코·터키·폴란드 등 향후 10년 부상할 나라로 꼽아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루치르 샤르마 지음 / 서정아 옮김 / 토네이도 / 456쪽 / 2만원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스스로 노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의 이 라틴어 격언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적용된다. 세계 경제는 2000년대 들어 유례없는 ‘골디락스 경제’를 구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 미만인 나라를 일컫는 신흥국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브릭스(BRICs)로 상징돼 왔던 신흥국의 2003~2007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7.2%로, 1980년대와 1990년대 평균 성장률의 두 배에 가까웠다. 이런 추세가 정점에 이른 2007년에는 세계 183개국 중 114개국이 5% 넘는 성장률을 즐겼다. 미국의 부채 확대와 저금리 기조에 기인한 전 세계적 유동성 팽창이 지구촌 성장에 고휘발성 연료를 댔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전 세계적인 성장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세계 경제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며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2009년 이후 3년 만에 ‘바오바(8%대 경제성장률 유지)’가 깨졌다.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은 이대로 멈추는 것일까. 아니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누구의 노젓는 힘이 더 세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을까. 신흥국의 잠재력은 여전히 유효할까. 세계적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루치아 샤르마 신흥시장 총괄사장이 이 물음에 답했다. 새책 《브레이크아웃 네이션(Breakout Nations)》을 통해서다.
저자는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을 앞으로 ‘10년 동안 유망국으로 부상할 나라’로 정의한다. 고속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경제성장률과 전망치가 소득수준이 비슷한 나라들의 평균과 맞먹거나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되는 나라를 추적하며 세계 경제의 새로운 흐름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면서 한국 체코 터키 폴란드 태국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미국 등을 주목한다.
저자는 “한국은 ‘아시아의 독일’이며 글로벌 경제발전사에서도 희귀한 예외 사례”라고 단언한다. 경제올림픽이 있다면 유일무이한 금메달 후보로서, 비슷한 경제수준의 대만을 가볍게 제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한국과 대만, 일본을 구분짓는 것은 조지프 슘페터가 제시한 ‘창조적 파괴’를 수용하는 자세”라고 말한다.
“한국 기업 경영진이 ‘의외로’ 대만의 경쟁 기업보다 선견지명이 우수한 점”도 높이 산다. 한국 기업의 불도저 같은 행동력과 정신력에도 많은 점수를 준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 그친 대만과 달리 최첨단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글로벌 브랜드를 창출한 것도 한국 기업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한국의 사례는 가족이 소유하되 공개 상장하고 전문경영인이 참여하는 기업 경영 모델이야말로 가장 큰 이점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중국 경제의 둔화세를 예견했다. GDP 대비 총부채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고, 임금 또한 급격히 상승해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갖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내수시장 또한 성숙기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특히 빠르게 진행되는 경제인구 고령화 추세는 재앙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인도 경제의 미래에 대한 시각도 부정적이다. 비대해진 정부, 족벌자본주의, 열악한 인프라 구축 역량, 노동력 공급 문제 등을 치명적 약점으로 꼽는다. 사회복지에 대한 정치권과 대중의 요구도 불안요소의 하나다. 복지요구에 휘둘려 생산성을 높이는 데 투자하지 못하는 브라질, 석유가 정부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등 원자재 덕에 살아남은 러시아 경제에 대한 전망도 비관적이다. ‘브릭스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저자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2만5000달러 사이인 나라에서 한국과 함께 체코의 역량을 높이 산다. 체코는 부채가 거의 없으며 서유럽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1만5000달러 사이인 폴란드도 체코와 함께 동유럽의 쌍둥이 별로 꼽는다. 이슬람 민주주의와 시장 주도의 경제체제를 택한 터키도 주목한다.
저자는 미국의 부상도 점친다. 미국은 중국과는 달리 달러화 가치가 절하되고, 임금 상승세가 둔화된 상태이며 생산성 또한 급격히 향상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분야를 중심으로 기술 전반에 걸쳐 강점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기술 혁신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