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 37개국에서 식량폭동까지 초래했던 애그플레이션(곡물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충격이 4년 만에 재연되고 있다. 옥수수 밀 콩 등 국제 곡물가격은 이미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옥수수가 주원료인 사료값이 뛰면서 소 돼지 닭 등 육류와 우유 달걀 등 낙농제품까지 연쇄적으로 파장을 미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 변동은 4~7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된다. 올 연말께부터는 국내 식탁물가에도 비상이 걸린다는 얘기다. 정부가 부랴부랴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애그플레이션은 세계 옥수수 생산의 36%를 차지하는 미국의 56년 만에 닥친 가뭄과 이상고온에다, 밀 산지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지의 작황 부진 탓이라고 한다. 남반구에서 옥수수를 수확하는 내년 2~3월까지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하지만 애그플레이션이 4년 전보다 우려되는 이유는 기후요인만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를 살린답시고 각국이 풀어댄 수조달러라는 시한폭탄의 존재다. 마구 풀린 돈은 생산부문으로 가지 못하고 원유 원자재 금 등에 순차적으로 투기거품을 만들어왔다.

종이돈이 흘러넘치는 세상이다. 프랑스조차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했을 정도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을 비롯해 20여개국의 기준금리가 연 1%에도 못 미치는 판이다. 26조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연기금이나 2조달러의 헤지펀드는 수익률 저하로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세계 증시와 부동산은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고, 셰일가스 혁명으로 원유시장도 한풀 꺾여 마땅히 돈 굴릴 데가 없는 상황이다. 가뭄과 작황부진은 방황하던 투기자본들이 대거 곡물시장으로 달려갈 더할 나위없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돈이 인플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 튤립투기 등 수많은 금융투기의 종착역이 한결 같았다. 국가와 국민이 땀과 눈물을 감내하지 않고 돈 풀어 경기를 부추기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결국은 거품으로 귀결될 뿐이다. 애그플레이션도 돈만 풀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주술이 빚어낸 정부 실패의 또 다른 단면이다. 타락한 정치가 만들어내는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