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곡물가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러시아 등의 주요 곡창 지대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곡물값이 폭등하고 있고 그 영향으로 주요 식품 가격까지 치솟고 있는 것. 내년에는 애그플레이션이 세계적으로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흥국 애그플레이션 현실화

인도네시아 일간 자카르타포스트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입 콩(대두)에 매기는 5% 관세를 8월 말까지 유예해주기로 했다고 26일 보도했다.

콩값이 급등한 데 따라 최근 3주간 콩을 원료로 한 주요 식품인 두부와 ‘인도네시아식 청국장’ 템페 가격이 33%나 치솟은 데 대한 대응 조치다.

이에 앞서 인도네시아 두부제조업협동조합인 CITTMC는 전날부터 수도 자카르타에서 수입 콩에 대한 관세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두부와 템페 생산을 중단했다. 일시적인 관세 유예로는 재료비의 70%를 차지하는 수입 콩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타르요 조합장은 “관세 유예가 아니라 철폐가 필요하다”며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생산 중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부뿐만이 아니다.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 상승 탓에 인도네시아의 주요 식품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6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4.53% 높아졌다. 5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4.45% 상승했다.

다른 신흥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이달 옥수수 값이 연초 대비 30% 이상 급등했고 소고기 값도 전월 대비 약 7% 올랐다. 파키스탄의 물가상승률도 전월보다 1.7%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알파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곡물 가격이 20% 오르면 중국의 물가상승률이 0.26%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옥수수와 콩을 사료로 쓰는 소, 돼지 등의 사육비용이 증가한다. 이는 고기값 인상으로 이어지고 고기를 원료로 쓰는 식품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와 콩 선물 가격은 최근 한 달간 40% 이상 올랐다. 미국 농무부(USDA) 관계자는 “옥수수 가격이 50% 오를 때마다 거의 대부분의 식품값은 평균 1% 이상 오른다”고 설명했다.

◆내년 물가 오른다

USDA는 이날 “곡물값 폭등이 내년에는 식품 가격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내년 식품 가격이 3~4%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식품 가격은 작년보다 2.5~3.5% 상승할 것이라는 종전 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품목별로 내년 소고기 값은 올해보다 최대 5% 오를 것으로, 유제품 값은 4.5%까지 뛸 것으로 예상했다. 리처드 볼프 USDA 이코노미스트는 “닭, 칠면조 등 가금류는 빨리 자라는 특성이 있어 가장 먼저 애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 가격 상승세 확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가뭄과 폭염이 세계 최대 옥수수 산지인 미국 중서부의 ‘콘벨트’를 강타한 탓에 작황이 나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50개주 중 29개주 1300개 카운티가 가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USDA는 올해 옥수수와 대두 수확량 예상치를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