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에 잠 설친다고?…바나나 먹으니 잠 오네
“더위가 사람 잡네.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강릉을 비롯해 전국에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고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는 지역이 확대되는 등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상청은 8월 말까지 열대야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보했다. 낮에는 열사병, 밤에는 극심한 더위로 인한 수면장애 등 여름철 건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더욱이 이번 주말부터 8시간 시차가 나는 영국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새벽경기를 보는 올빼미족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생체리듬을 잘 유지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더위 먹었다’ 열병 주의

열대야에 잠 설친다고?…바나나 먹으니 잠 오네
폭염 속에선 흔히 ‘더위 먹었다’고 하는 ‘열(熱)피로’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대개 어지럽고 기운이 없으며 몸이 나른해지고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게 주요 증상이다. 땀으로 빠져 나간 수분과 염분이 제때 보충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고온의 작업장 인부나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 땡볕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골퍼, 외판원 등에게 자주 발생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열피로를 막기 위해선 야외에서 땀을 많이 흘릴 경우 전해질이 함유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물을 자주 먹는 것이 좋은데, 맹물은 좋지 않다. 염분 섭취를 한다고 소금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이온 음료를 마셔도 좋다. 특히 뜨거운 햇볕 아래 심한 육체 활동이나 운동은 삼가야 한다. 흔치는 않지만 열피로보다 더 심각한 것이 ‘열사병’이다. 과도한 더위에 몸의 체온조절 중추가 마비돼 체온이 급격히 상승, 의식 장애와 혼수 상태를 유발한다. 이땐 환자의 옷을 냉수로 흠뻑 적시고 선풍기 등으로 몸을 시원하게 해준 뒤 즉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열대야 땐 ‘치맥(치킨+맥주)’ 피하세요

기온이 높으면 잠자는 동안 체내의 온도조절 중추가 발동하면서 중추신경계가 흥분하고 결국 몸을 자꾸만 뒤척이면서 깊은 수면, 예컨대 렘(REM) 수면이 줄어든다.

한번 뒤틀린 생체리듬은 열대야가 없어지더라도 곧바로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 피로감, 짜증, 무기력, 집중력 장애, 두통, 식욕부진, 소화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선우성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요즘 같은 열대야에는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요인들을 멀리해야 한다”며 “카페인이 든 커피나 홍차, 초콜릿, 콜라, 담배 등은 각성효과가 있어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가급적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공포영화와 같은 납량물을 보거나 컴퓨터게임 등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또 침대에 누워 15분 내에 잠이 오지 않으면 잠자리를 벗어나서 몸을 식힌 후에 다시 잠을 청하는 것도 좋다. 저녁 무렵 간단하게 산보하는 것 정도는 좋지만 늦은 시간 과다한 육체활동은 좋지 않다. 시기적으로 런던올림픽 기간 중 늦은 밤에 TV시청을 하면서 ‘치맥’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열대야에 차가운 맥주와 고칼로리의 치킨은 복통, 장염의 원인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맥주 등 발효주는 성질이 차가워 찬 속을 더욱 차게 할 수 있다. 또 치킨의 경우 단백질뿐 아니라 지방성분이 많이 함유돼 칼로리가 매우 높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야식으로 먹으면 위장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특히 평소 지방간이 있는 경우 ‘치맥’은 독소를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안정민 을지병원 영양과장은 “여름철 땀을 많이 흘려 체력이 떨어졌다면 치킨과 맥주 대신 수분과 단순 당이 높은 수박, 참외, 자두, 포도 등이 좋고 이 또한 너무 늦은 밤에는 좋지 않다”면서 “위장이 약하고 배가 자주 아파 설사가 잦다면 껍질이 부드럽게 벗겨지는 잘 익은 복숭아나 바나나 등이 좋다”고 조언했다.

특히 우유, 바나나 등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트리토판’ 성분이 들어있어 잠 안오는 밤에 조금씩 먹으면 좋다. 한편 한방에선 땀을 많이 흘리고 여름을 타는 사람에게 오미자·인삼을 달인 차가 좋다고 권장하고 있다. 또 둥굴레차는 중추신경계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피로를 풀어주고 졸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수면에 좋은 침실환경으로 바꿔라

열대야를 극복하려면 쾌적한 침실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이불 등 침구는 땀날 때 몸에 잘 붙지 않는 마나 삼베·모시로 바꾸거나 나무 자체의 성질이 차가워 더위를 잊게 해주는 대나무 혹은 참나무로 만든 것으로 바꾸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 베개는 좀 딱딱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메밀·겨로 된 것이 좋다. 자기 전에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1~2시간 켜놓아 집안 온도를 낮춘 후 잠자리에 드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에어컨을 잠든 뒤에도 계속 켜놓으면 신체 밸런스에 좋지 않다. 홍승철 성빈센트병원 수면클리닉 교수는 “에어컨은 호흡기를 건조하게 만들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며 “에어컨 대신 얼음주머니를 머리 옆에 놓고 자면 잠들기 전 체온을 적절하게 낮춰주고 잠이 들고 나서도 얼음이 녹아 에어컨처럼 체온을 과도하게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풍기는 바람을 직접 쐬면 두통·질식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벽쪽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 특히 만성 폐질환자, 어린이, 노약자는 바람을 직접 쐬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