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케이블 방송 쇼타임(Showtime)의 드라마 ‘덱스터(Dexter)’에는 연쇄살인자를 찾아다니며 이들을 살해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매회 마지막 부분에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매회가 끝날 때마다 방송사는 드라마의 페이스북 계정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시청자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으로 앱을 내려받아 방송 일정과 에피소드 가이드를 확인할 수 있다.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미니게임도 제공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연동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덱스터의 페이스북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수백만명에 이른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수천명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거나 댓글을 남기고 있다.

◆‘경계가 사라진 시대’

여기서 한 가지 퀴즈. 드라마를 보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미니게임을 즐긴 사람은 총 몇 종류의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것일까. TV나 컴퓨터로 드라마를 봤을 것이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했을 테고, 태블릿PC나 스마트폰으로 앱을 실행했을 테니 어림잡아 3~4종류는 된다. ‘덱스터’라는 한 가지 콘텐츠를 4개의 기기로 즐긴 셈이다. 이른바 ‘4스크린’이다.

롱텀에볼루션(LTE) 네트워크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이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N스크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N스크린은 영상이나 음악 등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기기에서 연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뜻한다. 컴퓨터와 TV, 스마트폰에서 콘텐츠를 이용했다면 3스크린이 되는 것이다. N스크린이 가능하려면 콘텐츠를 개별 기기가 아닌 ‘별도의 공간’에 저장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해놓고 유·무선 통신망을 통해 다양한 기기로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는 식이기 때문이다.

◆‘3스크린’에서 N스크린으로

N스크린 서비스의 시초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이동통신사업자 AT&T가 2007년 내놓은 ‘3스크린 서비스’다. TV와 개인용컴퓨터(PC), 휴대폰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애플도 같은 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놨다. ‘애플TV’란 이름이 붙은 애플의 제품은 애플의 콘텐츠 플랫폼 아이튠즈를 TV 화면에서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서비스 모두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영화라도 한 편 보려면 컴퓨터를 켜고 콘텐츠를 찾아 다른 장비로 공유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성공적으로 N스크린 서비스를 안착시켰던 업체는 넷플릭스다. DVD 대여 업체로 시작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바꾼 회사다. 넷플릭스는 어떤 단말기에서든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해 온라인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인터넷 웹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게임기, 셋톱박스 등에 OTT(Over The Top) 방식으로 서비스를 내장했다.

◆OSMU에서 ASMD로

그동안 N스크린 서비스는 주로 ‘멀티미디어’ 관점에서 논의돼왔다. 이른바 ‘OSMU(One Source Multi Use)’ 방식이다. 이용자가 한 번 영상이나 음악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구입하면 TV, 스마트폰, PC 등 다양한 기기에서 끊김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나 현재 국내에서 제공되는 대부분 서비스들이 이 같은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N스크린 서비스가 OSMU에서 ‘ASMD(Adaptive Source Multi Device)’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방식은 TV나 PC, 스마트폰 등 다양한 스마트기기별 특성에 맞춰 콘텐츠를 소비한다. 앞서 ‘덱스터’의 예처럼 TV로는 드라마를 보고 태블릿PC를 통해 미니게임을 하고 PC로 페이스북에 접속해 댓글을 남기는 등 각 기기에 최적화된 일을 하는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N스크린 서비스가 △TV를 시청하면서 다른 스마트기기로 방송 중인 콘텐츠와 관련된 부가 정보 제공 △스마트기기를 스마트TV의 지능형 리모컨이나 모션 컨트롤러로 사용 △여러 사용자가 함께 콘텐츠를 소비하는 등 3가지 유형으로 보편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신·제조·방송·포털사까지 N스크린 사업 참여

현재 다양한 업체들이 N스크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애플은 아이튠즈란 콘텐츠 플랫폼을 여러 기기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N스크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스마트폰부터 스마트TV에 이르는 다양한 라인업을 무기로 N스크린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과 CJ헬로비전 현대HCN 등 케이블업체, 지상파 방송사들도 시장에 뛰어든 상황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들도 다양한 기기로 스포츠 중계와 같은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N스크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