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평균 4.9%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했다. 한전 이사회는 누적적자를 해소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두 자릿수 요금인상안을 고수해왔지만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굴복했다. 정부는 올여름 빠듯한 전력수급을 완화하기 위해 오는 6일부터 전기요금을 올리기로 했다.

◆철강업계 큰 타격

한전에 따르면 이날 비상임 이사 2명을 제외한 13명 상임·비상임 이사들은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오전 8시부터 약 3시간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고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인상률은 △주택용 2.7% △산업용 6.0% △일반용 4.4% △농사용·교육용 3.0% 등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일반 가정은 월 평균 요금이 1200원(월 전력사용량 302㎾h) 오른다. 인상폭이 가장 큰 산업용 요금의 경우 기업별 추가부담액은 월 평균 32만7000원(월 전력사용량 5만 9000㎾h)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전자 자동차 등의 대규모 사업장들은 연간 300억~500억원의 원가상승 요인을 흡수해야 할 상황이다. 철강업계의 추가 부담요금은 연간 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럴 거면 왜…?”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을 4.9% 올리면 연간 약 100만㎾의 절전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전력피크기를 맞아 원자력발전소 한 기를 짓는다는 심정으로 인상안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에서는 전기요금 인상률을 둘러싸고 격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태식 이사회 의장을 비롯 일부 사외 이사들은 정부가 요구한 대로 인상안이 상정된 것을 놓고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오전 8시에 시작한 회의는 9시20분 한 차례 정회한 뒤 10시50분에야 끝났다. 김중겸 한전 사장은 10시로 예정됐던 사내 행사도 취소한 채 이사회에 참석했다.

한 사외이사는 “결국 정부 요구안을 수용할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았다”며 “한전 집행부 측은 요금인상 요인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물가 상승 등을 걱정하는 정부의 시책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한전이 제출한 16.8%(연료비 연동제 포함) 인상안을 반려하면서 5% 이상의 인상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전한 바 있다. 한전이 지난 6월 제출한 13.1% 인상안보다 더 높은 인상안을 내놓자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연내 추가 인상 시도

정부는 이날 전기위원회 위원들의 서면 결의를 받아 6일부터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휴가철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8월 셋째주 전에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한전은 이번에 정부안을 수용하면서 올 연말 한 차례 더 전기요금 인상을 건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평균 4.9%를 올린다 하더라도 2조원의 적자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전의 누적적자는 10조원에 육박한다. 한전 발전자회사들의 실적을 연결 기준으로 합산해도 6조원에 이른다. 한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여건이 쉽지 않겠지만 올 연말 한번 더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게 이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