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발로 금과 은이 갈리는 슛오프 순간 기보배는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에 앞서 슈팅라인에 섰다. 과녁을 위해 활을 조준하는 순간 TV 중계화면에 잡힌 활에는 ‘WIN&WIN’(윈엔윈)이라는 로고가 선명했다.

슛오프까지 가는 명승부였던 여자 양궁 개인 결승은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였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대결이기도 했다. 기보배가 한국의 윈엔윈이 만든 활을, 로만은 미국 호이트사의 활을 썼다. 결국 한국은 선수 간 대결뿐 아니라 활 대결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기보배 금메달 뒤엔 국산 활

기보배는 선수생활 내내 윈엔윈 활을 썼다. 시위를 당길 때와 놓을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부드러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윈엔윈은 이 안정감을 강화하기 위해 활에 신소재를 많이 사용한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탄소 소재 활 생산에 성공했다. 알루미늄을 탄소 소재로 바꾸면 활의 무게와 진동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박경래 윈엔윈 대표는 국가대표 양궁 선수 출신이다. 선수생활을 거쳐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우리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가 윈엔윈을 설립한 건 1994년. 호이트가 세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할 때였다. 머지않아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1998년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 지금 국가대표인 오진혁 선수가 윈엔윈 활을 들고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했다.그러자 호이트사가 제안해 왔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활을 만들어 달라는 것. 사실상 호이트의 이름을 쓰자는 제안을 거절한 박 대표는 오히려 아시아 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일본의 야마하를 인수하며 맞불을 놨다. 또 다른 국내업체인 삼익스포츠와 함께 ‘활 한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산 활 물량공세에 국산 ‘흔들’

올림픽 선수용 활 시장은 호이트, 윈엔윈과 삼익스포츠의 3파전 구도다. 계속 구도가 바뀌긴 하지만 호이트가 절반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윈엔윈이 약 30%, 삼익스포츠가 10%가량 차지하고 나머지를 군소 회사들이 나눠 갖고 있다. 런던올림픽 여자 개인전 8강 진출자 중에서는 호이트를 쓰는 선수가 5명, 윈엔윈 2명, 삼익 1명이다.

베이징올림픽 때는 윈엔윈과 삼익을 합쳐 호이트를 넘다시피 했지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위기감을 느낀 호이트가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에 나선 것. 각국 대표급 선수들과 1대1로 접촉해 성적에 따른 포상금 지급을 약속하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금액은 성적에 따라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아직 국내업체들은 올림픽 메달을 땄을 경우 ‘성의표시’를 하는 정도다.

2008년 이후 유럽 선수들을 중심으로 호이트로 옮겨가는 선수들이 늘었다. 베이징올림픽 남자 개인전에서 우승한 빅토르 루반(우크라이나)은 당시 윈엔윈 활을 썼지만 이후 호이트와 계약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호이트 활로 남자 단체 금메달을 딴 마르코 갈리아조(이탈리아)도 원래는 삼익 활을 썼던 선수다.

◆전문가들 “기술개발 지원 필요”

세계 양궁의 전력평준화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우리 활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엔 우리나라 국가대표급 선수들마저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호이트 활을 사용하는 추세라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호이트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데다 덩치가 큰 회사여서 그들의 물량공세에는 당할 수가 없다”며 “호이트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목돈이 들어가는 기술 개발뿐인데, 이에 대한 지원책이 거의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