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도 어린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 내 이야기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아동문학 창시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스스로 동화작가이기를 거부했다.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구두수선공, 어머니는 세탁부였다.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이 된 안데르센은 노래와 연기 재능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정치인 요나스 콜린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안데르센은 ‘죽어가는 아이’라는 시를 내놓으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1834년 발표한 자전적 장편소설 ‘즉흥시인’은 그를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70년을 살면서 200여편의 동화를 발표해 훈장까지 받은 그였지만, 개인적으론 불행한 삶을 살았다. 몇 차례의 청혼도 그의 남루한 외모와 모호한 성(性) 정체성 탓에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195㎝의 큰 키가 문제였는지 류머티즘으로 말년을 고생하다가 137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났다. ‘국민작가’의 장례식에는 왕과 왕비까지 참석했지만, 그의 가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가난뱅이였던 내가 왕과 마주앉아 코코아를 마시다니…”라던 그의 말처럼, 안데르센 그 자신이 바로 성공한 ‘미운 오리 새끼’였고, 사랑에 상처받은 ‘인어공주’였으며, 역경을 이겨낸 ‘장난감 병정’이자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였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