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서울 계동 본사 지하 2층의 사내 직원교육용 강의실. 이곳은 요즘 업무시간이 끝난 후 저녁 7시부터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직원들이 모여든다.

현대건설이 스페인어 교육에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까닭은 최근 경제개발에 나서고 있는 중남미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해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스페인어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 남미 9개국을 비롯해 세계 21개국에서 공용어로 쓰이고 있어 해외 수주에 큰 도움이 되는 언어”라며 “최근 중남미 수주가 늘고 있어 스페인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수주 확대를 위해 건설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중동시장에 치중했던 수주 대상 국가를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등으로 넓히고, 정유·발전플랜트 최첨단LNG(액화천연가스) 담수화개발 등 부가가치가 높은 공종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중동은 좁고, 할 일은 많다”

SK건설은 지난해 9월 파나마에서 6억6200만달러 규모의 화력발전소 ‘파코(PACO) 플랜트’ 신설 공사를 수주했다. 파나마시티 서쪽으로 120㎞ 떨어진 카리브해 연안 푼타린콘 지역에 150㎿급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신설하는 프로젝트다.

삼성물산은 올해 초 카타르에서 2억9600만달러의 루자일 신도시 내 도로 공사 수주를 시작으로 진출 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19개였던 해외 법인을 올 상반기에는 24개로 늘렸다. 북아프리카, 남미 지역은 물론 국내 건설사들의 진출이 저조한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과 유럽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말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발전소 증설공사를 따내면서 현지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난 2월에는 콜롬비아 베요 하수처리장 공사(3억5000만달러)를 수주, 2003년에 준공했던 브라질의 ‘포르토 벨호 복합화력발전소’ 이후 약 10년 만에 중남미 시장에 재진출하는 데도 성공했다.

해외 신시장 개척은 통계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건설업체들은 79개국을 통해 총 321억달러 규모를 수주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53억달러)에 비해 27% 증가한 수치이자,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특히 중남미 지역에선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라크루즈 정유공장(21억달러·현대건설), 칠레 석탄화력발전소(12억달러·포스코건설) 등 대규모 플랜트 공사 수주에 힘입어 수주금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5억달러)보다 8배 이상 늘었다.

○‘첨단 고부가가치’형 공사 수주 늘어


국내 건설사들은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것은 물론 부가가치가 높은 공종에 진출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플랜트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 상반기 수주 실적을 공종별로 보면 플랜트가 179억달러로 전체의 56%를 차지했고, 건축 100억달러(31%), 토목 31억달러(10%) 순이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11월 필리핀에서 2조2000억원 규모의 정유 플랜트 공사 ‘페트론 리파이너리 마스터플랜 2단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기존의 정유공장을 현대식 설비로 신·증설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으로, 동남아에서 국내 업체가 수주한 프로젝트 가운데 사업비 기준으로 최대 규모다. 대림산업은 또 천연가스를 액화한 석유(GTL)와 해상풍력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GTL의 경우 1BPD(하루 1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급 시범 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 GS건설은 LNG, 담수화개발, 해상플랜트 등을 개척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최장 사장교 시공 기술을 독자개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설 계획이다. GS건설 관계자는 “현재 세계에서 주경간이 가장 긴 사장교는 1000m 안팎이지만 이를 1400~1800m 급으로 늘리는 신형식 사장교를 개발했다”며 “앞으로 해외 초장대 교량 분야 시장에 적극 진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이 싱가포르 주롱섬 반얀만 해저에 짓고 있는 ‘지하 유류비축 기지’도 신시장 개척의 사례로 꼽힌다. 2014년 5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이 사업은 총 사업비 7억1400만달러(약 7700억원) 규모로 현대건설이 처음 진출하는 분야다.

쌍용건설은 고급건축과 고부가가치 토목공사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내년 6월에 완공할 싱가포르의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482공구’는 국내 도로 건설보다 10배 이상 비싼 공사비로 주목받는 현장이다. 불안정한 매립지 지하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지표면 아래에 시멘트를 주입하는 등 최첨단 공법을 활용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 회사는 싱가포르의 ‘W호텔’, 말레이시아의 ‘르 누벨 레지던스’ 등의 최고급 건물을 잇따라 수주하기도 했다.

○“글로벌 건설사로”…인수·합병도 활발

해외 건설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수·합병 움직임도 활발하다. 해수담수화 사업에 뛰어든 GS건설은 최근 스페인의 ‘이니마’사를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역삼투압(RO) 방식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이니마는 담수플랜트 분야에서 세계 10위권 업체다.

대우건설도 설계 엔지니어링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건설시장의 트렌드가 이미 설계(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까지 책임지는 ‘일괄도급방식(EPC)’으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대우건설은 국내 경쟁사인 삼성엔지니어링과 엔지니어링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현대건설 등에 비해 설계 분야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물산은 채굴·광산 사업을 공략할 태세다. 호주에서 인도 디벨로퍼인 GVK와 합작으로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