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 북한은 김정일 시대와 다를 것인가? 북한에 변화가 있다면 그 변화가 의미있는 변화일까? 아니면 정권교체기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까? 이런 의문이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다. 김정일 사후 7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의미있는 변화는 분명히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일 사후 철저한 탈(脫)김정일 경향이다. 김정은은 그의 부친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지극한 효성’을 상품화한 ‘3년상 유훈통치’ 프로그램을 전혀 가동하지 않았다. 당 규약을 개정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명문화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온통 그를 지우고자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기야 인기없고 주민들의 기본적인 의식주조차도 해결해주지 못한 무능한 지도자를 그대로 업고 갈 바보는 없다.

전체적인 변화 흐름은 소위 개혁개방화 쪽인 듯하다. ‘자립적 경제건설노선’이라는 도그마와 선전전을 위해 2·8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 등과 같은 쓸데없는 대형 국책사업을 몰아붙였던 과거의 불합리성을 젊은 지도자가 모를 리 없다. 재작년 말 출범하면서 1년에 100억달러(약 11조원), 5년 내에 120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허풍을 떨던 대풍그룹과 국가개발은행도 해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친 군부 우대 방식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을 것이다. 군부 실력자 이영호 숙청은 정책적 측면에서 김정일 시대를 걷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김정은식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내부적으로 협동농장 개선책과 서비스 및 무역 분야의 개인 투자 방안도 내놓았다. 지난 몇 년간 북한정권이 시장을 통제하면서 계획을 강화해온 정책흐름에서 본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다. 김정은은 지난 4월15일 김일성 탄생 100돌 기념 경축식에서 “북한 주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이런 다짐은 새 지도자로서 다분히 이전 집권자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문제는 북한체제가 구조적으로 갖고 있는 결핍과 낮은 생산성, 비효율성 등을 젊은 지도자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다. 우선 쌈짓돈이 없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수순으로 볼 때 김정은은 우선 대일(對日) 전후배상금을 종잣돈으로 쓸 공산이 크다. 1990년대 초 공산권 붕괴 이후 북한에 밀어닥친 위기상황 타개책으로 추진한 것이 북·일 수교협상이었으며, 50억달러라는 구체적인 액수가 타진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과 미국 등이 일본 측에 대(對)북한 조화와 병행의 원칙을 요구했고, 이어서 터진 제1차 북핵 사건으로 이 협상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북·일 관계는 2002년 9월 김정일과 고이즈미 당시 일본총리가 ‘조·일 평양선언’을 통해 타결됐다. 보상이든 배상이든 경제협력의 틀 속에서 과거를 청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더구나 최근 동북아에서 국제적 위상을 되찾고자 하는 일본의 몸부림도 북·일 수교협상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로 10년 이상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65·가명)가 최근 평양에 초청 받아 김정은 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는 뉴스는 눈여겨볼 만하다. 간첩혐의로 1년6개월간 북한에서 연금상태에 놓였다가 2001년 가족을 남긴 채 북한을 탈출했던 그를 김정은이 초청해 환대한 것은 분명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

그렇지만 지난 북·일 수교사는 남·북 관계, 북·미 관계의 호전 없이는 결코 진전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결국 북한 김정은 정권의 성패 여부는 외교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외교역량은 대량 살상무기와 핵을 포기하고 보통국가가 되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쳐야 갖춰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몇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가 선거 캠페인에서 내놓았던 ‘비핵·개방·3000’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제정치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말이지만 주변국이 지혜를 짜서 젊은 지도자가 탈선하지 않고 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가 되는 셈이다.

이조원 < 중앙대 교수·국제정치 lcw658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