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도 막지 못한 '8년 만의 레슬링 金'
“결승 때 한쪽 눈이 안 보였다. 많이 불편했는데 개의치 않고 정신력으로 경기에 집중했다.”

‘부상 투혼’을 펼친 김현우(24·삼성생명·사진)가 끊어졌던 한국 레슬링의 금맥을 8년 만에 이었다. 김현우는 8일(한국시간) 런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6㎏급 결승전에서 헝가리의 타마스 로린츠를 세트스코어 2-0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부상도 막지 못한 '8년 만의 레슬링 金'
김현우는 오른쪽 눈덩이가 퉁퉁 부어 앞을 보기 어려운 상태에서 매트에 올랐다. 그는 예선전부터 상대 선수들의 버팅(butting·머리로 얼굴을 받는 행위)으로 시야가 가려져 왼쪽 눈으로만 싸웠다.

1세트에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친 그는 후반 파테르에 돌입했다. 수비 자세로 30초만 버티면 되는 상황. 마지막 2초를 남기고 하체가 들리며 위기도 맞았지만 1점을 따냈다. 2세트에서도 0-0으로 비긴 뒤 파테르 공격에 나섰다. 13초 만에 주특기인 측면들어던지기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로린츠가 수비 과정에서 다리를 건드려 방해했다며 김현우에게 2점을 줬다.

2-0 승리를 확정지은 뒤 그는 방대두 레슬링 총감독 등 코치진을 얼싸안고 승리의 포효성을 질렀다. 매트 중앙에 태극기를 펼쳐놓고 큰절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도와주신 지도자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응원해 주신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큰절을 했다”고 말했다.

8년 만의 금메달 쾌거에 레슬링계는 흥분했다. 레슬링은 1976년 몬트리올에서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후 효자종목으로 성과를 내왔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정지현이 금메달을 딴 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동메달 1개에 그치며 ‘노 골드’의 수모를 겪었다. 레슬링 선수단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4년간 절치부심했다. 믿었던 정지현마저 8강에서 탈락해 긴장했으나 김현우의 금메달로 추가 메달 가능성까지 노리게 됐다.

김현우의 금메달 획득에는 소속팀인 삼성생명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삼성생명은 아마추어 레슬링 발전을 위해 1983년 레슬링단을 창단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소속 선수들이 금메달 5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개를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생명은 선수단 운영을 위해 연간 20억~3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도 김현우를 비롯해 4명의 소속 선수가 출전했다. 삼성생명은 올림픽이 끝난 뒤 소속팀 선수들에게 지급할 포상금 규모를 결정할 계획이다.

김현우의 금메달에는 김인섭 삼성생명 코치와 끈끈한 ‘사제 간 믿음’도 있었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김 코치를 찾아가 감사를 전한 그는 “코치님이 태릉선수촌에 계시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그레코로만형 58㎏급 은메달리스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현우를 삼성생명으로 영입해 기술부터 마음가짐까지 모든 노하우를 전수했다. 국가대표 데뷔 첫해인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2회전에 탈락하며 1년여 이어진 침체기를 극복하게 해준 것도 김 코치였다. 김 코치는 김현우가 눈물을 흘리며 고민을 털어놓자 앞으로의 계획이 깨알같이 적힌 그의 수첩을 찢으며 “지금까지의 훈련을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해라. 기술적인 것에만 집착하면 안 되니 스스로 상대를 생각하면서 길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후 김현우는 마음을 다잡고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며 되살아났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