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왁자지껄한 시골장터…가슴 따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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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터
정영신 지음 / 눈빛출판사 / 480쪽 / 2만9000원
정영신 지음 / 눈빛출판사 / 480쪽 / 2만9000원
“아따메, 나한테는 공짜로 주지 마씨요. 이빨이 성치도 안해 먹지도 못하는디 안 살라요.” “아따메, 누가 사라고 그라요. 그냥 맛만 보랑께.”
전라남도 곡성장의 풍경이다. 맛보기 엿을 받아 먹으면 1000원어치라도 사야 하는 시골 장터의 인심. 이가 성치 않아 엿을 못 산다는 할머니와 안 사도 좋으니 맛만 보라는 엿장수의 대화가 훈훈하다.
《한국의 장터》는 저자가 1987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날래게 뛰어다니며 한국의 5일장을 기록한 사진첩이다.
500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 속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흑백사진들이 빼곡하다. 호박 두 덩이를 보자기 위에 얹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 허름한 선술집에서 탁주 한 잔을 들이켜는 할아버지,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봇짐을 머리에 얹은 사람들의 사진 속에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겹친다.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중간중간 토막글을 넣어 책을 더 풍성하게 했다. 전국 팔도의 5일장 82곳의 장터 정보는 물론 저자가 시골 인심을 접하며 겪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그중 마수걸이(맨 처음 물건을 파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저자는 “장사꾼들은 간혹 안경 낀 여자가 ‘바지락 1000원어치만 주세요. 된장국 올려 놓고 왔어요’ 하면 숨어버리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계속 1000원짜리 손님만 온다는 징크스가 있기도 하지만 옛날부터 안경 낀 여자가 마수하면 하루 운세가 좋지 않다는 낭설이 있기 때문. 마수걸이는 그만큼 장사하는 사람에게 하루의 운을 가늠하는 중요한 의식이라고 한다.
정선 5일장이 지역경제를 창출하는 대들보가 된 사연도 눈길을 끈다. 정선장은 1966년 2월17일에 처음 열려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시장. 인구가 감소해 장이 쇠퇴할 무렵인 1999년 3월17일 구세주가 찾아왔다. 정선 5일장 관광열차가 개통한 것이다. 정선군은 정선 5일장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했고, 휴일이면 서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장사꾼들은 “주말이면 장 안에 있는 약초가 다 팔려 나간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다문화시대는 장터 풍경도 바꿔놓았다. 삼척 도계장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샤니와 알리가 있다. “장터를 돌아다닌 지 2년이 됐다”는 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보석과 가방을 판다. 시골 장에 푹 빠져 장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기저기 다닌다. 시골 아낙네들은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가락에 반지도 껴보고 목걸이도 걸어보며 멋을 부린다.
저자는 “외국인이라는 낯선 얼굴을 대하는 우리네 여인들이 정겹다”며 “시골 장터의 얼굴도 점점 변하고 있다”고 전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전라남도 곡성장의 풍경이다. 맛보기 엿을 받아 먹으면 1000원어치라도 사야 하는 시골 장터의 인심. 이가 성치 않아 엿을 못 산다는 할머니와 안 사도 좋으니 맛만 보라는 엿장수의 대화가 훈훈하다.
《한국의 장터》는 저자가 1987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날래게 뛰어다니며 한국의 5일장을 기록한 사진첩이다.
500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 속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흑백사진들이 빼곡하다. 호박 두 덩이를 보자기 위에 얹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 허름한 선술집에서 탁주 한 잔을 들이켜는 할아버지,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봇짐을 머리에 얹은 사람들의 사진 속에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겹친다.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중간중간 토막글을 넣어 책을 더 풍성하게 했다. 전국 팔도의 5일장 82곳의 장터 정보는 물론 저자가 시골 인심을 접하며 겪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그중 마수걸이(맨 처음 물건을 파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저자는 “장사꾼들은 간혹 안경 낀 여자가 ‘바지락 1000원어치만 주세요. 된장국 올려 놓고 왔어요’ 하면 숨어버리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계속 1000원짜리 손님만 온다는 징크스가 있기도 하지만 옛날부터 안경 낀 여자가 마수하면 하루 운세가 좋지 않다는 낭설이 있기 때문. 마수걸이는 그만큼 장사하는 사람에게 하루의 운을 가늠하는 중요한 의식이라고 한다.
정선 5일장이 지역경제를 창출하는 대들보가 된 사연도 눈길을 끈다. 정선장은 1966년 2월17일에 처음 열려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시장. 인구가 감소해 장이 쇠퇴할 무렵인 1999년 3월17일 구세주가 찾아왔다. 정선 5일장 관광열차가 개통한 것이다. 정선군은 정선 5일장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했고, 휴일이면 서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장사꾼들은 “주말이면 장 안에 있는 약초가 다 팔려 나간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다문화시대는 장터 풍경도 바꿔놓았다. 삼척 도계장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샤니와 알리가 있다. “장터를 돌아다닌 지 2년이 됐다”는 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보석과 가방을 판다. 시골 장에 푹 빠져 장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기저기 다닌다. 시골 아낙네들은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가락에 반지도 껴보고 목걸이도 걸어보며 멋을 부린다.
저자는 “외국인이라는 낯선 얼굴을 대하는 우리네 여인들이 정겹다”며 “시골 장터의 얼굴도 점점 변하고 있다”고 전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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