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계획경제' 사실상 포기…수확물 30% 농민에 소유권
북한이 주민들에 대한 식량 배급제를 폐기하고 계획경제를 일부 완화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새 경제관리체계’를 도입하면서 사실상 계획경제와 배급제의 포기를 선언했다고 9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양강도 소식통은 “지난 6일부터 각 근로단체 조직과 인민반, 공장·기업소 등을 상대로 한 새 경제관리체계 도입과 관련한 강연회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새 경제관리체계는 ‘6·28 새경제관리체계’로 불린다.

◆장성택·박봉주 주도

北 '계획경제' 사실상 포기…수확물 30% 농민에 소유권
이번 조치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박봉주 노동당 제1부부장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경제관리체계의 골자는 국가가 각 생산단위에 계획을 정해주지 않는다는 것과 국가가 주민의 식량배급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각 단위에서 자체로 식량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양강도 소식통은 “특히 생산설비와 자재, 연료와 전력문제도 국가가 아닌 관련 공장이나 탄광, 발전소와의 독자적인 거래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국가기관 사무원(공무원)과 교육, 의료부문 종사자 등에 한해서만 국가가 배급을 하고 기타 근로자들의 배급제는 폐지됐다”고 주장했다. 농업분야에서는 올해 가을부터 새 경제관리체계를 도입해 농산물을 국가가 가져가던 방식을 폐지하고 생산계획과는 관계없이 전체 수확량에서 70%는 당국이, 나머지 30%는 농민들이 가져가도록 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중국식 개혁 따라가”

이 같은 조치는 최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파격적인 행보와 맞물려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만하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제난 타개를 위한 개선 조치일 뿐 근본적 체제변화로 보기는 무리라고 분석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식량난으로 북한의 배급제는 사실상 붕괴된 상태”라며 “유명무실해진 배급제를 폐기한다는 것이어서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놓았을 때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지만 이번에 또 꺼낸 것은 그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계획경제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협동농장에 일부 자율성을 주고,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부여하려는 것”이라며 “이런 개선 조치는 7·1조치 때도 시행했다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김정은이 젊은 지도자로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해 조급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김정은식 경제 개선의 폭은 과거보다 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김정은은 중국의 초기 개혁 개방과 같은 과정을 압축적으로 밟을 것”이라며 “경제 개혁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갓 출범한 김정은 체제로서는 주민들의 생활고 해결이 가장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며 “계획경제 시스템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 같은데 금융이나 유통분야의 개혁이 수반되는지가 이번 조치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