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와 박 후보 캠프를 총괄하며 쓴소리도 마다않는 김종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사진). 두 사람이 지난주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마주앉았다. 김 위원장은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내가 박근혜를 이기면 (박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이기고, 내가 지면 대선에서도 진다.”

이 말을 들은 박 후보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미소를 지었다고 당시 자리에 배석한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김종인이 박근혜를 이겨야 대선에서 이긴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김 위원장은 12일 기자와 만나 “박 후보의 정책이나 스타일 모두 내 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안들 때가 있다”며 “박 후보를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야 이번 대선에서 무난히 이길 수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뭐가 마음에 안드냐는 물음에 구체적 언급을 안했지만 최근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에 대한 서로의 인식 차이, 또 밖으로 비쳐진 박 후보의 불통 이미지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위에서 (박 후보를 향해) 쓴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다간 아무것도 못 고친다”며 “자리에 연연할 사람이 아닌, 그래서 잘 보일 필요도 없는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고 박 후보에게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캠프 내에서도) 몇몇 사람이 잘못된 조언을 해주는 데, 다들 권력을 잡으면 한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며 “버리고 갈 사람은 버리고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 후보와 김 위원장이 처음 만난 건 17대 국회 당시 김 위원장이 한·독(韓獨)의원친선협회장을 맡았을 때였다. 어느날 독일 출장을 앞둔 박 후보가 김 위원장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면서 국내외 여러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 얘기를 들으면서 준비를 잘 하면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후로 시간나는 대로 박 후보를 만나 나름의 조언을 했다. 김 위원장 표현대로라면 “대통령 한번 만들어보려고 자진해서 서비스해준 것”이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가 과거 발언을 수정하는 것을 겁내선 안된다”며 “2007년 경선에서 공약으로 내놓은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 정책이 그때는 대세였지만, 지금은 경제 상황이 많이 변해 경제민주화를 외친다고 해서 말을 바꾸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원칙만을 고수하다가는 시대 착오적으로 몰릴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논란인 박 후보의 5ㆍ16 발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박 캠프의 캐치프레이즈도 ‘박근혜가 바꾸네’로 정해졌는데, 이게 먹히려면 후보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박 후보는 충분히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가 오는 20일 당 후보로 결정되면 나와의 인식차를 좁히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태/김재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