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뒤죽박죽이다. 돈은 흘러넘치는데 안전자산 쏠림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은 미증유의 대혼란에 직면했다. 유럽에선 독일에 이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에서까지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가는 금리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에선 3년 만기 국채금리가 연 0.3%대로 내려서자 이번에는 회사채로 돈이 몰려 유니레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이 사상 최저인 연 0.45%에 회사채를 발행했다. 단기금리가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지자 금융사들은 MMF(머니마켓펀드)에 들어오는 돈을 사양할 정도다.

금융위기 이후 5년간 경기를 살리겠다고 각국이 풀어댄 돈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투자자들이 웃돈을 주고 국채를 산다는 얘기다. 정부에 돈을 꿔주면서 이자까지 얹어주는 뒤집힌 세상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부동자금은 국채로만 쏠려 채권값을 천정부지로(금리는 사상 최저로) 밀어올렸다. 이제 채권값이 꼭지를 찍고 내려갈(금리가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보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존 보글(83)이 “앞으로 10년간 채권시장은 끔찍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다.

그렇게 돈을 풀었지만 실물경제는 살아날 기미조차 안 보인다. 오히려 화폐가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실물과 자산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상품은 오르고 자산은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정부가 돈 풀어 유효수효를 늘리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케인스식 처방으로 지난 5년간 습관적으로 대응해온 어처구니 없는 결과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의 “경기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잘못된 정책”이란 지적은 백번 타당하다.

위기 탈출을 위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케인시안 포퓰리즘이 옴짝달싹 못하는 외통수에 빠진 상황이다. 위기 해소대책이 거꾸로 더 큰 위기를 조장하는 판국이다. 초저금리가 장기화할 때 어떤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또렷이 보여줬다. 초저금리는 미래 불안을 조장하고 희망을 차단하는 주술(呪術)이자, 시간이 지나봐야 나아질 게 없다는 자포자기 심리를 조장하는 독(毒)일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시장원칙에 의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국가가 더 개입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4.0식의 헛된 환상이 판을 친다.

그 어떤 경제위기에서라도 해법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경제의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보상받고, 구조조정을 감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경제에서 정치를 걷어내야 하지만 더욱 정부 의존적으로 변해간다. 경제민주화 슬로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소비가 미덕이 아니며, 복지가 성장동력이 될 수는 없다. 근로의욕과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원칙으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