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영선 대학구조개혁위원장 "기업들, 국가발전 기여 차원에서 대학 지원 대폭 늘려야"

부실대 퇴출 아닌 대학교육 경쟁력 향상 목표
경기 침체 해법… 내수 진작과 고등교육 투자


<대담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국내 대학들이 좋은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을 위해 대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들이 대학을 지원해 기업들에 유용한 대학 교육이 되도록 유도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이영선 대학구조개혁위원장(65·사진)은 산업 현장과 대학교육간 미스매치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내놓았다. '기업에 맞는 인재'를 요구하기 전에 대학에 대한 기업들의 기여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교수와 한림대 총장을 지낸 이 위원장은 지난달 초 대학구조개혁위원장에 임명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 작업을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다.

9월 초 하위 15% 대학에 해당하는 '재정지원 제한 대학' 발표를 앞두고 대학들의 생사 여탈권을 쥔 이 위원장을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이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구조개혁위원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 위원장은 "기업에선 '구조 조정'이라고 하지만 대학은 '구조 개혁'이 맞는 표현" 이라며 "세간의 관심은 '부실 대학'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정부의 궁극적 목표는 대학들의 기초 체력을 키워 교육의 질을 높이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이기도 한 그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한 해법으로 내수 진작과 고등교육 투자를 꼽았다. 글로벌 불황이 장기적이고 구조적 문제인 만큼 해답도 단기 처방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금융경제화 심화로 불평등 정도가 높아지면서 중산층의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고 진단한 뒤 "실물경제 활성화와 내수 진작을 통한 '건전한 자본주의'가 요구되며, 이를 위한 장기 해결책으로 고등교육 내실화를 통한 인적 자본 육성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계 대학평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 대학의 수준은 어느 정도 올라왔습니까.

한국 대학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대학평가는 연구력이 크게 좌우해요. 최근 이공계 연구자들의 성과가 나오며 국내 대학들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대한 반성도 꽤 있습니다. 논문 숫자 같은 정량적 평가에 치중하다 보니 대학의 질적 수준 향상에 도움을 못 주고 있다는 지적이죠. 지식정보화 사회를 맞아 사람의 소양, 소통 능력에 대한 교육이 더욱 필요해 졌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대학교육은 심각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역할도 그런 부분에 집중하는 것입니까.

전반적으로 대학교육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점엔 이견이 없습니다.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가장 큰 목표는 대학교육의 개선과 경쟁력 제고를 유도하는 것이죠. 현실적으로 수년 후면 국내 대학 정원보다 수험생 숫자가 줄어들게 됩니다. 대학의 어려움이 불 보듯 뻔해요. 이대로 가면 문 닫는 대학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대비해 충격파를 줄이느냐가 핵심 과제입니다.

-치열하게 변신하는 주요 사립대에 비해 국립대의 변화 속도가 느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방 유명 국립대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수도권 집중 현상에 따른 지방대의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간 지방대, 특히 국립대들의 대학 운영 방식이 세계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부분도 있었어요. 경쟁과 혁신에 초점을 맞춰 대학을 운영해야 하는데, 국립대는 국가 예산 지원 같은 '든든한 울타리' 속에 있었죠. 대학 혁신을 위해선 내부 구성원 의견도 중요하지만 바깥의 변화도 수용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국립대가 혁신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최근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만.

교과부가 나서 국립대의 거버넌스(지배) 구조를 현행 총장 직선제가 아닌 '공모제' 등의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립대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과거에 시대적으로 직선제가 필요한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또 다르죠.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경쟁적 혁신을 추구하는 대학 체제로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우수 인력이 있는 곳에 우수 자원이 투여되는 조직적인 대학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인터뷰] 이영선 대학구조개혁위원장 "기업들, 국가발전 기여 차원에서 대학 지원 대폭 늘려야"
-기업이 대학 경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들은 대학이 기업을 위해 좋은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며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입사한 뒤 재교육을 시키는 기간이 길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대학 입장에서 보면 '과연 대학이 기업만을 위해 존재하느냐' 라는 질문이 가능해요. 좋습니다. 기업이 인재를 필요로 한다면 대학을 좀 더 많이 지원해 줘야죠. 기업에 적합한 대학교육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게 올바른 방향입니다. 대학에 대한 기업의 기여도가 좀 더 확대돼야 합니다."

-대기업들의 매출 규모는 커졌는데, 대학 지원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국내 대학들은 항상 등록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처럼 기부금을 적게 받는 곳은 세계적으로 거의 없어요. 기부금이 있어야 대학교육이 공공성을 갖습니다. 공공 부문에선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이 전무하고, 기부금은 없으니 등록금 의존도가 커지는 거죠. 어느 기업이 재단으로 있기 때문에 그 대학을 지원한다, 이런 건 공공적 기부가 아닙니다. 기업들이 대학 일반에 대해 기여하고 지원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기업만이 아니라 개인의 소액 기부도 활성화될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대학교육도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것으로 봅니다.

-세부적 문제로 들어가겠습니다. 올해 대학 구조개혁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큰 틀은 그대로 갑니다. 재정지원 제한대학 발표가 지난해 처음 시작됐어요. 장기적 방향을 제시하고 대학들이 준비할 구체적 지표도 공개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년 만에 이를 변경하면 정책 일관성을 잃고 대학들도 혼란에 빠져요. 하위 15% 대학 선정에서 수도권과 지방을 같이, 또 따로 평가하고 권역별로 상한선을 두는 방향도 지난해와 동일합니다. 구조개혁 작업을 처음 진행한 결과 대학들이 지표에서 긍정적 변화를 보이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올해까지 정책의 방향을 유지하고 내년쯤 평가를 통해 새로운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과 대학 구조조정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기업은 구조조정이라고 표현하지만 대학은 '구조개혁'이란 표현이 맞아요. 기업과 대학은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표이지만 대학은 '공공성'이 중요합니다. 기업은 불법 행위 제재 외엔 시장에서 평가받는 것이죠. 정부가 그만둬라, 말아라 할 필요가 없어요. 대학 구조개혁은 방향이 약간 다릅니다.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맞지만 대학 스스로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공공적 여건을 조성하는 거죠. 다만 부정, 비리, 위법을 저지른 대학은 엄정하게 조치하고 있습니다.

-대학 평가에서 지방과 수도권의 여건 차이가 심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도 지방대 총장을 지냈지만 지방대 문제는 시각을 달리 보고 싶어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사례를 보면 지방에 위치한 유명 대학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무조건 지방대이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사고를 바꿔야 합니다. 지방대의 역할과 모델을 찾아 노력하고 투자하면 방법은 있어요. 지방대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죠. 대학 구조개혁의 기본 취지도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대학이라면 기본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대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수도권과 지방을 분리해 평가하도록 보완하는 등 지표를 신경 써서 구성하고 있어요.

[인터뷰] 이영선 대학구조개혁위원장 "기업들, 국가발전 기여 차원에서 대학 지원 대폭 늘려야"
-대학 구조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세간의 관심과 달리 부실대학의 퇴출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대학이 공공성을 해치는 경우, 즉 법을 어기고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 한해 폐쇄 조치를 내리는 것이고요. 경영이 부실한 대학에 대해선 자문과 컨설팅을 통해 회생할 수 있도록 돕고 있죠. 그렇게 해도 힘에 부치는 대학은 자발적 학교 폐쇄를 유도하는 시스템입니다.

-경제학자로서 한국경제 전망과 위기 극복 해법도 말씀해 주세요.

국내 문제라기 보다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대외 지향적 수출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짧은 시일내 경기 회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유럽도 상황이 어렵고, 중국 역시 대외 지향적 경제이다 보니 최근 경제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당분간 내수 진작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피하려면 정부가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좀 더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내수 진작과 경기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노력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가장 심각합니다. 중산층이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은 자본주의 존립에 상당한 해를 끼쳐요. 금융의 글로벌화로 세계 경제의 불평등이 커지면서 중산층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소득이 있어야 내수도 활성화되고 실물 경제가 살아납니다.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해요. 과도한 금융자본의 횡포를 막고 제도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기업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죠. '건전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인재를 활용한 위기극복 방안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인적 자본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수의 상당 부분이 서비스 산업인데, 서비스 산업의 기본 요소는 인적 자본이거든요. 수준 높은 교육, 특히 대학교육의 내실화를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합니다. 2만 달러 시대에 정체되지 않으려면 사회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고등 교육이 관건이 됩니다. 대학에서의 건전한 도덕성 함양, 소통, 교양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된다고 보는 것이죠. 대학에서의 높은 수준의 학문적 발전과 연구력 향상이 결국 경제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정리=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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