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과일잼 팔던 소년, 22세 백만장자 된 비결은…'슈퍼팬' 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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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 프레이저 도허티 슈퍼잼 CEO
돈버는 재미를 알다
달걀 부화시켜 닭으로 키우고 할머니 잼 팔아 이익 본 꼬마 사업가
학교 자퇴하고 '잼' 사업에 올인
최연소 납품업체 사장
무설탕 천연 과일잼 개발해 18세때 대형마트 웨이트로즈 입점
연예인처럼 팬관리
'아이디어 주세요' 커뮤니티 활용…고객이 소매점 입점 제안하게
매년 지역 어르신 초청 잼 파티
돈버는 재미를 알다
달걀 부화시켜 닭으로 키우고 할머니 잼 팔아 이익 본 꼬마 사업가
학교 자퇴하고 '잼' 사업에 올인
최연소 납품업체 사장
무설탕 천연 과일잼 개발해 18세때 대형마트 웨이트로즈 입점
연예인처럼 팬관리
'아이디어 주세요' 커뮤니티 활용…고객이 소매점 입점 제안하게
매년 지역 어르신 초청 잼 파티
할머니의 잼을 맛본 사람은 누구나 그 맛을 좋아했다. 영국 에든버러에 살던 한 소년은 그 비결이 궁금했다. 잼 조리법을 알려 달라고 매일같이 할머니를 졸랐다. 비결을 안 것은 소년이 열네 살이 되던 해. 할머니는 소년을 불러 2파운드를 손에 쥐어줬다. 시키는 대로 오렌지 몇 개와 설탕 한 봉지를 사온 소년은 할머니와 오렌지잼 몇 병을 만들었다. 만든 잼은 이웃집을 돌면서 팔았다. 잼을 전부 팔자 소년 프레이저 도허티의 손에는 4파운드가 남았다. 현재 연 매출 700만파운드(약 124억원)가 넘는 잼 제조업체 ‘슈퍼잼’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달걀 소년, ‘잼보이’가 되다
도허티 슈퍼잼 최고경영자(CEO)는 어릴 때부터 ‘꼬마 사업가’로 유명했다. 열 살 때 농장에 가서 달걀 여섯 개를 얻어왔다. “부화시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농장 주인의 말에 오기가 생겨서다. TV 아래에 있는 케이블 박스가 따뜻해 부화 장소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위에 달걀을 올려두고 밤낮으로 살폈다. 병아리가 나온 것은 며칠 뒤. 도허티는 이를 암탉으로 키워 달걀을 얻었다. 이웃들은 한 상자에 1파운드씩 주고 도허티의 달걀을 사갔다. 도허티는 이때 처음 돈버는 재미를 알았다.
할머니 잼 제조 비법을 배웠을 때 그는 달걀을 팔아 용돈을 벌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할머니표 잼’에 ‘슈퍼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상표를 디자인해 잼 병 앞에 부착했다. 전단지도 직접 만들어서 출력했다. 잼을 담은 병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고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잼을 팔러 돌아다닌 지 두 달, 도허티의 잼 고객은 50가구로 늘었다. 그는 동네에서 ‘잼보이’로 유명해졌다. 2년 뒤엔 동네의 거의 모든 집에 잼을 배달했다. 잼을 만드느라 시간이 부족해진 도허티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슈퍼잼에 ‘올인’하기 위해서였다. 16세 때였다.
학교를 그만둔 도허티는 잼 사업에 더욱 진지하게 임했다. 잼의 역사를 공부하던 중 당시 잼 시장이 정체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수십 년간 시장 규모가 줄어왔던 것. 잼에 설탕이 많이 들어가 건강에 좋지 않은 데다 왠지 진부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사람들은 보통 ‘잼’이란 단어를 들으면 할머니나 교회 바자를 연상했다.
도허티는 고리타분한 잼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무설탕 천연잼을 구상했다. 설탕을 넣지 않고 100% 과일로만 잼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설탕을 빼면 단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처음엔 꿀을 대신 넣었지만 단가가 높아졌다. 달콤한 과일 주스를 첨가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수백 번의 실험을 거친 끝에 과일과 과일 주스로만 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할머니도 이해하는 컨셉트
‘100% 천연 과일잼’이라는 이미지가 잡히자 도허티는 자신감이 붙었다. 힘을 잃어가는 잼업계를 뒤흔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 영국의 대형마트 체인업체 웨이트로즈가 도허티의 고향인 에든버러에 새 매장을 내기로 한 것. 웨이트로즈는 중소 납품업체를 돕는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었다. 웨이트로즈 단골들은 무설탕 천연잼 같은 고급 식품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기로 유명했다. 도허티는 “슈퍼잼이 웨이트로즈에서 팔릴 수만 있다면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확신했다.
도허티는 잼을 들고 웨이트로즈를 찾았다. 웨이트로즈 구매담당자는 100% 과일잼이란 아이디어가 좋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브랜드 컨셉트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보완해 다시 찾아온다면 입점을 고려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처음 구상한 것은 ‘슈퍼히어로’였다. ‘슈퍼잼’이란 이름에서 ‘슈퍼맨’이 연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단지도 슈퍼맨 이미지의 잼보이가 잼랜드에서 구출작전을 편다는 내용으로 디자인했다. 하지만 웨이트로즈에서 다시 퇴짜를 맞았다. 슈퍼잼의 웰빙 이미지가 만화책 같은 브랜드 컨셉트 때문에 희미해진다는 것. “누가 살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구나!” 도허티는 무릎을 쳤다.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상표는 단순하게, 성분은 명확하게 표기했다. 과일 사진은 넣지 않았다. 물론 슈퍼히어로 그림도 들어가지 않았다. 웰빙 천연잼 컨셉트를 가져온 도허티에게 웨이트로즈는 입점을 허락했다. 18세 소년이 납품업체 사장이 된 것이다.
웨이트로즈 납품이 결정되면서 가내 수공업을 포기하고 지역 공장에서 잼을 만들기로 했다. 문제는 주문량. 단가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 번에 5만병을 주문해야 했다. 도박이었다. 그만큼 팔리지 않으면 생산 비용은 모두 도허티가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결과는 ‘대박’이었다. 납품 첫날에만 1500병이 팔렸다. 8개월 동안 15만병이 팔려 나갔다. 슈퍼잼이 히트를 치자 또 다른 대형마트 체인인 테스코가 입점을 문의해왔다. 영국 전역 300여개 테스코 매장에서 슈퍼잼이 팔렸다. 이어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에도 슈퍼잼이 소개됐다. 지난해부터는 호주 러시아 핀란드 등에 슈퍼잼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도허티가 22세 때였다. 평범한 영국 청년이 잼을 팔아 백만장자가 된 것이다.
○팬들과 함께 꾸리는 회사
동네 배달을 하던 사업 초창기, 도허티는 병의 뒷면에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놨다. 슈퍼잼을 먹어본 사람들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한번은 병에서 상표를 떼는 것이 어렵다는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병을 재활용할 때 상표가 성가시다는 것이었다. 이후 도허티는 상표를 떼기 쉬운 재질로 바꿨다.
슈퍼잼 온라인 커뮤니티도 소통 경로로 이용했다. 현재 커뮤니티 회원 수는 1만여명. 커뮤티니 공간 중에는 ‘슈퍼잼 입점 제안하기’ 코너도 있다. 동네 소매점에서 슈퍼잼을 사고 싶은 팬들이 입점 제안서를 써내는 것이다. 제안서를 받은 도허티는 해당 소매점에 이를 엽서로 보낸다. 입점이 성사되면 제안 고객에겐 잼을 한 병 선물한다.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효과는 쏠쏠했다. 수천명이 주변 소매점 입점을 제안했다.
도허티는 2007년부터 ‘슈퍼잼 파티’도 열고 있다. 동네 노인들을 초대해 빵과 함께 슈퍼잼을 제공하는 파티다. 예전에 할머니가 잼을 만들면 꼭 동네 사람들을 초대했던 것에서 착안했다. 영국 각지에서 연 평균 100여 차례 열리는 슈퍼잼 파티엔 1년에 500여명이 참석한다. 도허티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슈퍼잼 파티를 여는 팬들도 생겼다. 팬들이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모아 장소를 선정하고 지역 노인을 초청하는 것이다. 파티 이후에는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려 공유한다.
도허티가 직원을 채용하는 기준도 슈퍼잼 팬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고 매장을 제안하며 동네 슈퍼잼 파티 때 자원봉사를 한 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슈퍼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제품을 가장 잘 판매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도허티식 직원관리는? ‘각자 알아서 하기’다. 업무를 정해주지도, 근무시간이나 근무 방식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슈퍼잼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신 회사 인트라넷에는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는 달력이 있다. 달력엔 업무들이 적혀 있어 직원들은 그중 자유롭게 선택하고 경과보고를 남길 수 있다. 도허티는 “상명하달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산만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게 우리 세대가 일하고자 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