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10일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전소됐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를 뒤져 다음날 채모씨(74)를 붙잡았다. 정황 증거는 충분했지만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듯했던 채씨는 ‘페인트’ 조각 하나 때문에 결국 붙잡혔다.

채씨의 신발에 묻어 있던 페인트와 타다 남은 숭례문 누각에서 과학수사요원들이 채취한 페인트 성분이 일치했던 것. 채씨는 같은 해 10월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미세증거물 분야의 권위자인 홍성욱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품질경영팀장은 “현미경으로 채씨의 신발을 관찰하자 ‘페인트’란 답이 나왔다”고 회상하며 미세증거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충남 아산시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원장 김정식)에서는 충남지방경찰청 산하 과학수사요원과 강력팀원 20여명을 상대로 한 교육이 진행됐다. 경찰이 민간교육기관에 과학수사요원 교육을 위탁하기는 이번이 첫 사례다. 과학수사요원들의 풍부한 현장 경험에 학계의 첨단 증거과학 기법을 접목, 증거재판주의에 대비하자는 취지에서다.

홍 팀장을 필두로 혈흔형태 전문가인 서영일 국과수 남부분원 이공학과 공업연구사, DNA감식 전문가인 임시근 남부분원 법의학과 유전자분석실장, 경찰대 교수 출신이자 지문감식 전문가인 유제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서 △분광(分光) △미세증거 △혈흔 △생물학적 증거 △지문 등을 가르쳤다.

강의 중에는 과학수사요원들에게 흙을 파고 손톱을 깎도록 한 뒤 현미경으로 손톱 밑에 남아 있는 토양 증거를 관찰하는 실습도 진행됐다. 범행 현장에 남아 있던 티셔츠와 용의자의 칼에서 찾아낸 ‘반짝이’ 성분을 대조해 진범을 잡은 사례를 소개한 홍 팀장은 “티셔츠 앞면에 새겨진 글자에 남아 있는 반짝이 성분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라며 “반짝이는 잘 보이며, 썩지 않아 유용한 미세증거물”이라고 설명했다.

충남경찰청 과학수사요원인 한장현 검시관도 “이번 교육은 민간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만큼 특화된 장비를 쓰는 점이 남달랐다”고 평가했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지문 등 미세증거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 광원분석 장비인 ‘폴리뷰’ 등 다양한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유 교수는 “아직까지 과학수사요원들은 수사의 조연 정도로만 인식되고 모든 공은 범인을 검거한 형사에게 가버리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교육은 과학수사요원들의 전문성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산=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