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극심한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에너지 순수입이 2008년 기준 4.67 TOE/인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 인해 201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5위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세계 7위에 이르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증가율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여건 아래에서 정부와 국회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선제적으로 설정하고 이의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법을 제정한 것은 시의적절하고 타당한 조치였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2011)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탄소시장을 통한 감축 목표 달성시 실질 소득과 가계소비, 사회후생이 증가함은 물론 물가와 고용 및 교역조건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기준 1713억달러(전년 대비 42% 증가)에 달하는 화석연료 수입비용이 국가경제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무상할당·조기감축 인정 등 기업 적응위해 최대한 배려

정부는 7월23일 배출권거래제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함으로써 탄소시장의 세부 규칙을 제시했다. 예고된 시행령의 핵심 내용은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특례와 일원화된 운영체계라 할 수 있다. 처음 실시되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산업계가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과 엄정한 탄소시장 질서를 확립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타협안이라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무상할당과 조기 감축 인정 등 산업계에 대한 지나친 특혜 우려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 2017년까지 배출권의 100%가 무상으로 할당되고 2020까지도 97%가 무상배분된다는 점은 저탄소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탄소시장의 역할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국내외 관련 연구는 물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김용건 외, 2010)의 연구 결과도 배출권의 무상할당이 유상할당시보다 실질 소비(-0.13%), GDP(-0.17%), 물가(+0.34%)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무상할당은 오염자부담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됨은 물론 심각한 시장왜곡(노후화력발전소의 연장 운영을 통한 배출권 장사 등)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의 무상할당이 긍정적 기능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시행령 예고안의 유상할당 일정은 지나치게 느리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산업계에서는 3%의 유상할당으로도 산업계에 4조~5조원의 비용부담을 초래한다는 주장과 함께 국내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이나 외국인 투자기피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거론하고 있다. 이는 국제경쟁에 민감한 업종에 대해 100% 무상할당을 유지한다는 시행령 예고안의 내용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시행령 예고안의 100% 무상할당 대상업종 선정 기준을 적용할 경우 산업부문 배출량의 약 80.5%가 무상할당 대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령 예고안에 따라 총 배출권의 3%를 유상으로 할당하더라도 이에 따른 비용부담은 탄소가격 가정(30유로 혹은 $20/tCO₂)에 따라 1530억~2520억원 수준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산출액 대비 0.006~0.009%, 부가가치 대비 0.015~0.024%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산업계의 가격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유상할당 수익의 대부분이 산업계로 환류된다는 점이다. 배출권거래제법(제35조)은 유상할당 수익을 온실가스 감축 설비나 기술개발 등에 지원토록 하고 있다. 유상할당으로 거둔 재원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의 저탄소화를 지원하는 데 재투자된다는 점에서 이는 산업계의 ‘부담’이 아니라 체질개선의 ‘촉매’인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물론 다른 어떤 사례에서도 배출권거래제 시행이 생산기지 이전이나 투자기피를 초래했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는다. 에너지산업을 대변하는 국제기구인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연구 결과(Reinaud, 2008)에서도 탄소누출이 가장 우려되는 업종으로 평가되는 알루미늄 업종에서조차 EU 배출권거래제가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나 수입비중 증가와 같은 탄소누출 현상이 관찰되지 않음을 확인한 바 있다.

또한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 관리도 산업체의 경우 지식경제부가 맡는 등 부문별로 서로 다른 부처가 관장기관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장기관 다원화는 배출권거래제의 행정적 효율성과 일관성을 크게 훼손하는 위험한 주장이다. 배출권거래제에서는 감축 목표와 할당량 조정 과정이 바로 금전적 이익으로 결부됨은 물론 특정 업체·부문에서의 관리 부실이 다른 업체·부문의 부담으로 작용함으로써 그 폐해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각해진다.

유상할당 수익, 산업계 재투자 가격경쟁력에 심각한 영향 없어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한 서로 다른 부처의 관리를 통해 부처 간 경쟁을 촉발한다면 배출권 시장은 제식구 감싸기를 통한 도덕적 해이로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현행 목표관리제에서도 관장기관별로 명세서(배출량 신고서)에 대한 상이한 검증기준 적용 및 검증 결과, 배출전망 및 목표설정 부풀리기 등 관장기관 운영체계의 폐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30여개국 중 업종별 관장기관 체제를 운영하는 곳은 하나도 없으며, EU에서는 국가별로 나뉘어져 있는 관리방식도 통합해 운영할 계획임을 볼 때 이는 논란의 가치가 없는 문제라 하겠다. 오히려 산업계에서 우려하는 문제들은 관장기관 체계 도입이 아닌 전문적이고 일원화된 제도 운영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현재의 배출권거래제 시행령 예고안은 100% 무상할당, 국제경쟁 민감업종에 대한 배려, 조기 감축 실적과 상쇄의 허용, 다양한 시장안정화 조치,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중소기업 등에 대한 금융·세제상의 지원 등 이중·삼중의 산업계 보호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EU는 물론 다른 어느 국가의 배출권거래제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준의 특례이다. 지금은 산업계에 대한 추가적인 혜택과 지원보다는 무상배출권의 과잉배분으로 인한 탄소시장 무력화 가능성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김용건 <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 기후대기연구실장 >

△서울대 경영학과 △KAIST 산업경영학 박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환경국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