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서에 서명해주세요. 휴대폰 카메라엔 테이프를 붙이겠습니다.”

지난 18일 경북 구미에 있는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섬유 ‘헤라크론’ 생산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장 근처에서 먼저 받은 것은 두 장의 서류. 내부를 촬영해 외부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1979년 제품 개발을 시작, 미국(듀폰) 일본(데이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2005년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2009년 듀폰이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아라미드 섬유는 강철보다 강도가 세고 열에 강해 ‘슈퍼섬유’로 불린다.

◆‘황금실’ 개발 위한 기술전쟁

헤라크론 공장은 100여명의 관련 직원들 외엔 사장 결재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출입카드를 찍는 순간 원격으로 휴대폰의 카메라와 인터넷이 차단된다. 박종태 헤라크론PC(Production Center)장은 “헤라크론은 쓰임새가 넓고 부가가치가 높아 ‘황금실’로 불린다”며 “수십년 공들인 기술개발의 집약체인 만큼 보안이 철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라미드 섬유는 직경 1.6㎜로 350㎏의 무게를 견딜 만큼 강도가 높다”며 “강철보다 5배 강하고 불에 잘 타지 않아 방탄복, 광케이블, 우주항공소재 등에 쓰인다”고 설명했다. 헤라크론 완제품 한 상자(400㎏)는 1000만원으로, 일반섬유의 10배 가격에 판매된다.

공장 본동 맞은편엔 원료를 저장하고 불순물을 걸러주는 정제 탱크들이 줄지어 서있다. 본동 옆엔 30m 높이의 폴리머 저장탑이 자리잡았다. 이해운 구미공장장은 “연간 5000t의 헤라크론을 생산해 북미와 남미, 중동 등지로 수출한다”고 말했다.

◆듀폰의 소송으로 위기

1984년 입사 후 헤라크론 개발 역사와 함께해온 박 PC장은 듀폰과의 소송 얘기가 나오자 “설비 증설도 해야하는데 울분이 터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00억원을 투자해 30년 가까이 연구한 끝에 생산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소송에 걸렸다”며 “품질이 높아지고 생산 규모를 갖춰가니까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미드 섬유의 세계 시장 규모는 연간 6만t(1조8000억원) 정도로, 듀폰과 데이진이 90% 이상 점유하고 있다.

헤라크론은 탄생까지 두 차례의 고비를 이미 넘겼다. 코오롱이 고(故) 윤한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와 공동연구해 1985년 미국·영국 등에 특허를 냈을 때도 듀폰이 이의를 제기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외환위기 여파로 사업을 잠시 접어야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동부법원은 작년 11월 듀폰의 주장을 받아들여 코오롱인더스트리에 9억2025만달러(1조487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코오롱의 아라미드 생산 및 판매금지 등에 대한 판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오롱 관계자는 “1심 판결이 마무리되면 바로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