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19일 오전 6시11분

2009년 11월25일 증시 마감 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한 줄짜리 ‘공시’가 떴다. 휴대폰 터치스크린 전문업체 시노펙스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동종업체인 모젬의 최대 주주(33.3%)로 올라섰다는 내용이었다. 시장의 반응은 썰렁했다. “핵심 거래처인 모토로라의 추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를 왜 인수하느냐”는 것이었다.

우려는 이내 현실이 됐다. 적자를 견디다 못한 모젬은 이듬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됐다. 채권단의 결정으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도 들어갔다. 모젬의 기술력을 믿고 인수를 밀어붙였던 손경익 시노펙스 사장(사진)은 투자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그로부터 2년 반. 모젬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 회사는 최근 금융감독원에 상반기 중 매출 377억원, 영업이익 52억원, 순이익 65억원을 올렸다고 신고했다. 2006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반기 흑자를 달성했다. 매출도 상반기에만 377억원을 올려 작년 연간 매출(325억원)을 넘어섰다. 내외부에선 ‘모젬이 이제 발딱 일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노펙스와 모젬 경영을 겸하고 있는 손 사장은 “기술 개발에만 ‘올인’한 결과 삼성전자를 납품처로 뚫을 수 있었다”며 “여세를 몰아 이른 시일 내에 코스닥 재상장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면서 모젬의 재기 스토리가 업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모젬은 2005년 말 코스닥 입성 당시만 해도 가장 주목받는 휴대폰 부품업체 가운데 하나였다.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모토로라가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승승장구해서다. 그러나 모토로라를 믿고 2006년 700억원을 설비 확장에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시장은 스마트폰을 앞세운 애플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고, 여기에 키코 손실까지 더해졌다. 2006년부터 대규모 손실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모젬은 회생불능’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손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시노펙스와 동종업계였던 만큼 모젬의 기술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손 사장은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모젬에 134억원을 증자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쥐었다.

그 후 코스닥 퇴출, 워크아웃 개시 등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손 사장은 모젬 직원들에게 기술 개발에 올인하도록 독려했다. 덕분에 모젬은 터치스크린 관련 인듐주석산화물(ITO) 필름 기술을 양산화하는 데 성공, 올해부터 삼성전자에 본격 납품하게 됐다. 모젬이 터치스크린 패널 원단에 회로를 입히면 모듈사업을 하는 시노펙스가 후공정 작업을 마친 뒤 삼성에 납품한다. 현재 모젬 매출의 95%는 삼성에서 나온다. 손 사장은 모젬의 하반기 실적이 상반기보다 훨씬 좋아질 것으로 자신했다. ‘갤럭시S3’ 판매가 늘어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모젬의 ‘패턴 윈도 필름 데코레이션’ 매출도 급증하고 있어서다. 스마트폰 강화 유리에 장착되는 이 제품은 상반기에만 11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손 대표는 “채권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술 개발비를 지원할 정도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며 “재상장을 위해 540억원에 이르는 차입금을 출자전환하는 방안을 채권단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