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말기에 ‘신의 아들’로 불렸던 ‘육방(6개월 방위)’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 줄을 놓고, 어머니는 미국으로 도망가 집안이 풍비박산 난 낙만은 헌병대에 ‘육방’으로 소집된다. 보직은 이발병이지만 대대장과 바둑 두기, 변소 청소에다 헌병 대신 영창 근무까지 서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곽경택 감독(사진)의 ‘미운 오리 새끼’. 곽 감독이 2001년 흥행작 ‘친구’에 이어 11년 만에 내놓은 자전적 이야기다. 곽 감독은 18개월 방위로 근무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영상에 오롯이 녹여냈다. 아버지 역 오달수를 제외한 출연진은 곽 감독이 멘토로 나선 SBS ‘기적의 오디션’에서 발굴한 신인 연기자들이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미운 오리 새끼들이죠. 하지만 그들이 나중에 백조가 될지 누가 압니까. 저도 원래 의사나 군인이 되려고 했지만 영화감독이 됐죠. 지금 제 처지는 백조로 볼 수 있는데, 깃털이 빠졌어요. 영화 속 미운 오리 새끼들이 빨리 성장해 제가 깃털을 이식하도록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곽 감독은 낙만처럼 군대 시절 이발병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목공의 귀를 실수로 잘랐던 일화는 중대장의 귓불을 자르는 장면으로 재현된다. 극중에서처럼 병영 내에서 상관을 찌르는 부하를 목격하기도 했다.

“군대 체험을 많이 넣었습니다. 군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중이 되려다 끌려온 행자 출신 죄수였어요. 변기 속 이물질을 꺼내려고 스스럼없이 손을 집어넣더군요. 손을 씻으면 된다면서요. 작은 깨달음을 줬죠. 그의 말대로 손을 씻으면 될 일인데, 저는 더럽다고 피하기만 했거든요.”


극중 행자 출신 죄수는 힘이 좋아 몸 쓰는 일을 많이 한다. 잡초를 베고, 변기를 청소하는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는다. 그러나 그는 누명을 쓰고 갇혀 있다. 세상에는 그처럼 억울한 사람이 많다는 메시지다. 군대가 부조리한 사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과잉 충성을 하는 중대장이다. 대대장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낙만을 시기해 그를 끌어내리려고 기회를 엿본다.

“낙만과 주변인을 통해 사람 사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삶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한걸음 떨어져 보면 코미디예요. ”

낙만이 서툰 솜씨로 병장의 머리카락을 죄다 뜯어놓는 장면은 웃음을 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병장이 응징하려는 찰나 낙만은 사진병으로 차출돼 위기를 모면한다.

“사람들은 백조를 원했지만 저는 미운 오리 새끼들을 데려왔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에겐 아직 미래가 있기 때문이죠. 이 영화를 통해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곽 감독은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의 열 번째 영화이지만 제작하기가 제일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투자사가 외면하는 바람에 20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주변 지인들로부터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합류했다.

곽 감독은 낙만 역 김준구의 연기를 칭찬했다. “연기하기에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모두 해냈어요. 그의 다양한 얼굴이 매력적입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