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덕지구의 1만여가구 재건축에 급제동이 걸리고 있다. 건설사와 시공(공사)본계약 체결이 줄줄이 표류하고 있어서다. 조합원들은 건설사들이 당초 시공조건으로 내걸었던 ‘수익보장’ 관련 약속을 이행하라는 입장이지만, 시공사들은 부동산시장 장기침체로 조건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버티고 있다.

◆공사계약 잇달아 좌초

28일 고덕시영재건축조합에 따르면 지난 25일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공사계약 승인안건이 부결됐다. 당초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과 맺은 ‘시공계약’을 승인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합원 3분의 2 동의를 얻지 못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개최한 정기총회에서도 공사계약승인을 의결했지만 지난 7월24일 서울 동부지방법원은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조합원 A씨는 “대다수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예상보다 수천만원씩 더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공계약 체결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공 본계약을 앞둔 고덕주공4단지의 경우 조합이 시공계약 총회 상정을 추진하자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장 교체와 시공사와의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소유자모임 관계자는 “당초 계획보다 조합원 1인당 분담금이 6000만~7000만원 높아지는 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소유자모임이 주축이 돼 오는 10월13일 임시총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덕주공7단지는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의도적으로 본계약을 미루자 조합이 본계약을 건너뛰고 지난 21일 관리처분총회를 열었다. 조합은 롯데건설이 계속 본계약 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시공사를 교체할 예정이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롯데건설이 당초 약속한 163%의 무상지분율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설계변경 필요성 등을 제기하면서 계약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관리제를 적용하고 있는 고덕주공2단지에선 건설사들이 지난 7월 시공 참여를 포기했다.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건설사가 공사비 대신 미분양 물량을 일반 분양가로 인수하는 조건을 붙인 게 원인이다. 조합은 시공 참여 조건을 변경해 조만간 다시 시공사 선정에 나서는 것을 검토 중이다.

◆낮아진 수익성이 원인

조합원과 시공사들이 충돌하고 있는 것은 재건축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주택시장 침체로 조합원분을 뺀 일반분양 아파트 분양가를 원하는 대로 올려서 수익보전을 하기가 쉽지 않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고덕지구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사들은 최고 171%대의 높은 수익(무상지분율)을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집값이 떨어지면서 이런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일반분양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급격히 줄어든 까닭이다. 분양가를 올리면 미분양이 발생해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럼에도 조합들은 당초 약속했던 조건을 요구하고 있고, 건설사들은 조건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곽창석 나비에셋 대표는 “당초 3.3㎡당 2300만원 이상에서 일반분양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지만 2000만원에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며 “건설사들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평형 변경과 공사비 인상을 추진하자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는 한 재건축사업 표류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