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 자격으로 정치권에 뛰어든 안대희 전 대법관의 ‘외도’를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시킨다”는 비판론도 거세지만 “권력비리 등 정치권 부패 척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퇴임 후에도 주로 법조계에 머물렀던 대법관 출신들이 최근 들어 학계로 진출하는 등 활동영역이 다소 넓어진 편이지만 정치권은 생소한 곳이란 점에서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단독개업→대형로펌→석좌교수

29일 본지가 1990년 이후 퇴임한 47명 대법관을 전수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전체의 48.9%인 23명이 법무법인에서 대표 또는 고문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우 소속이 4명으로 가장 많고, 김앤장을 비롯해 태평양 광장 세종 등 대형로펌들에 골고루 포진해 있다. 10명(21.3%)은 단독 또는 합동법률사무소 형태로 개업했으며, 7명(14.9%)은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법관 출신이 드물어 수입이 많은 단독개업이 당연시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로펌붐이 불면서 퇴임 직후 로펌 대표변호사 자리를 꿰차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박우동 전 대법관이 1996년 광장 대표로, 윤영철 전 대법관(전 헌법재판소 소장)이 1997년 김장리 대표로 각각 영입된 것이 그 시초였다. 2010년 7월 김용담 전 대법관이 세종 대표로 영입되는 등 ‘거물 전관’에 대한 변호사업계의 수요는 아직도 여전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관예우 논란과 맞물려 퇴임 대법관의 로펌행은 주춤한 상태다. 대법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퇴임 후 영리 목적으로는 개업하지 않겠다”고 자의반 타의반 다짐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 대신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됐다. 이용훈 대법원장(고려대)을 비롯해 작년에 퇴임한 박시환(인하대) 김지형(원광대) 이홍훈(한양대, 화우 고문도 겸임) 등 4명의 대법관은 모두 대학으로 갔다. 그 전에는 2004년 조무제 전 대법관과 2005년 배기원 전 대법관이 각각 모교인 동아대와 영남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간 것이 전부였다.

○정치권 외도, 안 전 대법관이 첫 사례

대법관 출신이 학계 말고 법조를 벗어나는 경우는 고위공무원으로 임명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현 김황식 국무총리는 대법관 4년차 때 감사원장을 거쳐 총리로 임명됐고, 이회창 전 대법관 역시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낸 뒤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 후보까지 됐다. 안우만 김석수 전 대법관은 국무총리에 바로 임명됐고, 김영란 전 대법관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퇴임 후 정치권으로 직행한 사례는 안 전 대법관이 유일하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