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야스쿠니 신사에 우연히 들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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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자리잡은 군국주의 공간
한반도 출신 영령도 함께 있어
조선인 전사자 위패 돌려받아야"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
한반도 출신 영령도 함께 있어
조선인 전사자 위패 돌려받아야"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를 연구하고 데이터베이스화(DB)하는 학술연구팀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것은 2003년 여름이었다. 우리 일행이 묵은 호텔은 도쿄 중심가에 있었다. 아침 일찍 눈이 뜨여 일행 몰래 호텔을 빠져 나와 산책을 나갔다. 지하철역 구단시타역에서 조금 걸어가자니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祠)’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 외곽에 있는 줄 알았는데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이 놀라웠다. 입구에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들어가 보았다.
신사 뜰에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의 동상이 서 있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우러러보았다. 우리 조선인 학병 중에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먼 이국의 하늘 아래 산화한 이가 17명에 달한다. 그들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을 올렸다. 일본인 고위 정치가가 수시로 참배하는 내실은 개방이 안 돼 들어갈 수 없었지만 들어가 볼 생각도 없었다.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의 ‘가미카제’는 13세기 여몽연합군이 일본으로 침입할 때 연합군의 함대를 격파(?)한 태풍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 것이다. 일본군 수뇌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애초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패망의 조짐이 짙어져가자 최후의 수단으로 경비행기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는 자살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가미카제 전투기에는 충돌할 적함까지 갈 만큼의 연료만 넣고 폭탄을 최대한 적재했다. 또한 이 전투기에는 이륙 기능만 있고 착륙 기능이 없었다. 가서 죽으라는 얘기로, 가미카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 중간에 도망치거나 적에게 귀순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다.
전투기를 몰 정도의 훈련을 시키기 위해선 고급인력이 필요했다. 일본은 학병 중 중학교를 마쳤거나 전문대학 출신들을 뽑았다. 몇 달 동안 군사훈련을 시키고 대기시켜 놓았다가 어느 날 비행기에 오르게 한다.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뽑혔다고 통보를 받으면 죽으러 가는 것임을 안다. 대개는 이 명령을 받으면 선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는다고 한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기 전 일왕이 하사했다는 술을 한 잔 마시고 만세삼창을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때 기분이 어땠을까? 내 나라 내 겨레를 위한 죽음도 아니고 일본군의 일원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하게 자폭 전사하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죽어간 조선인 전사자들의 위패도 바로 이곳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
징병을 자원입대로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자폭하는 비행기에 오르기를 원한 조선인 대원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인 특공대원의 나이는 대개 17세에서 23세 정도였다. 20세 전후의 한창 나이에 그들은 이역(異域)의 하늘에서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즉,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자폭이었다. 그런데 그들 조선인 특공대원 전사자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군신(軍神)으로 모셔져 있다. 기막힌 일이 아닌가. 일본은 죽은 조선인 전사자들까지도, 그들의 죽음까지도 자기네들을 위한 죽음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인 전사자들의 위패를 야스쿠니 신사에 두면 안 된다. 우리한테 돌려줘야 한다. 강제로 끌고 가서 자기네들 멋대로 죽인 조선인 청년들의 영령(英靈)을 더럽히는 행위를 이제는 중단하기를 바란다. 신사에 합사(合祀)된 한반도 출신 전사자의 수가 무려 2만1000명이다. 영령이 있다면 대성통곡할 노릇이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억지로 전쟁터로 내몰더니 이제는 그때의 희생자들을 일본의 군신으로 받든다면서 영령을 신사에 가둬두고 있다.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조선인 전사자들의 위패를 몽땅 돌려받는 것이다. 일본의 신사에 왜 조선인 전사자들의 명단이 있단 말인가. 정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야스쿠니 신사의 조선인 위패를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이 도를 넘어서는 요즘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자들의 집단적 광기를 다시 보는 듯해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
신사 뜰에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의 동상이 서 있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우러러보았다. 우리 조선인 학병 중에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먼 이국의 하늘 아래 산화한 이가 17명에 달한다. 그들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을 올렸다. 일본인 고위 정치가가 수시로 참배하는 내실은 개방이 안 돼 들어갈 수 없었지만 들어가 볼 생각도 없었다.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의 ‘가미카제’는 13세기 여몽연합군이 일본으로 침입할 때 연합군의 함대를 격파(?)한 태풍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 것이다. 일본군 수뇌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애초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패망의 조짐이 짙어져가자 최후의 수단으로 경비행기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는 자살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가미카제 전투기에는 충돌할 적함까지 갈 만큼의 연료만 넣고 폭탄을 최대한 적재했다. 또한 이 전투기에는 이륙 기능만 있고 착륙 기능이 없었다. 가서 죽으라는 얘기로, 가미카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 중간에 도망치거나 적에게 귀순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다.
전투기를 몰 정도의 훈련을 시키기 위해선 고급인력이 필요했다. 일본은 학병 중 중학교를 마쳤거나 전문대학 출신들을 뽑았다. 몇 달 동안 군사훈련을 시키고 대기시켜 놓았다가 어느 날 비행기에 오르게 한다.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뽑혔다고 통보를 받으면 죽으러 가는 것임을 안다. 대개는 이 명령을 받으면 선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는다고 한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기 전 일왕이 하사했다는 술을 한 잔 마시고 만세삼창을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때 기분이 어땠을까? 내 나라 내 겨레를 위한 죽음도 아니고 일본군의 일원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하게 자폭 전사하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죽어간 조선인 전사자들의 위패도 바로 이곳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
징병을 자원입대로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자폭하는 비행기에 오르기를 원한 조선인 대원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인 특공대원의 나이는 대개 17세에서 23세 정도였다. 20세 전후의 한창 나이에 그들은 이역(異域)의 하늘에서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즉,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자폭이었다. 그런데 그들 조선인 특공대원 전사자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군신(軍神)으로 모셔져 있다. 기막힌 일이 아닌가. 일본은 죽은 조선인 전사자들까지도, 그들의 죽음까지도 자기네들을 위한 죽음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인 전사자들의 위패를 야스쿠니 신사에 두면 안 된다. 우리한테 돌려줘야 한다. 강제로 끌고 가서 자기네들 멋대로 죽인 조선인 청년들의 영령(英靈)을 더럽히는 행위를 이제는 중단하기를 바란다. 신사에 합사(合祀)된 한반도 출신 전사자의 수가 무려 2만1000명이다. 영령이 있다면 대성통곡할 노릇이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억지로 전쟁터로 내몰더니 이제는 그때의 희생자들을 일본의 군신으로 받든다면서 영령을 신사에 가둬두고 있다.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조선인 전사자들의 위패를 몽땅 돌려받는 것이다. 일본의 신사에 왜 조선인 전사자들의 명단이 있단 말인가. 정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야스쿠니 신사의 조선인 위패를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이 도를 넘어서는 요즘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자들의 집단적 광기를 다시 보는 듯해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