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MB를 위로하는 것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달 말 한국 신용등급을 ‘더블A(Aa3)’로 높였다. 일본 중국과 같은 레벨이며 역대 최고 등급이다. 예기치 않은 소식에 청와대와 정부는 환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해 이명박 대통령을 가장 기쁘게 한 것 두 가지만 꼽으라면 새누리당의 총선승리와 국가신용등급 상향”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총선승리를 위해 백일기도를 했다는 얘기는 아무리 여의도 정치가 싫어도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정파성은 버릴 수 없는 현실의 엄정함을 떠올리게 한다. 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의 승리였다고 해도 한때 여당의 대주주로서 떠안아야 했던 책임과 부담감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어제 만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선 승리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것이다.

3% 성장이 가져다준 선물

대통령에게 국가신용등급 상향이 갖는 의미는 좀 다르다. 그동안 G20정상회의 유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괄목할 만한 대외 성과를 많이 일궈냈지만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세력들의 전략적 외면과 집요한 추궁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꼭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국정 전반에 대한 평가도 그다지 후하지 않다.

하지만 무디스가 전해준 낭보는 대통령의 보람이기에 앞서 어느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다. 경기침체 지속과 가계부채 증가로 경제 전반에 비등하고 있는 비관론을 일정 거리에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무디스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뛰어나고 세계적인 불황에도 나름의 경제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등급상향 근거로 들었다. 우리는 올해 성장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지만 무디스는 이 와중에 3% 성장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높게 평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고성장 대선공약을 일찌감치 접어야 했던 대통령으로선 그 위기극복의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국정 최고 전문가는 대통령

하지만 이 대통령을 위로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치적은 쉽게 잊혀지고 과오는 두고두고 기억되는 법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모든 것이 아슬아슬한 갈림길에 서 있다. 올해 3% 성장목표가 불발로 끝나면 내년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기업들의 금고가 야금야금 축나기 시작하면 투자와 고용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서민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제창한 ‘공정사회’는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의 득표전략으로 변질되고 있다. 재정건전성도 위협 요인이 즐비하다. ‘하우스 푸어’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급진적 포퓰리즘적 요구도 대선국면과 맞물려 급속히 세를 얻을 수 있다.

이제 대통령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하고 국민들에게 그 근거와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 전까지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만 하면 된다는 식의 퇴행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집권 4년을 넘긴 현 시점에서 국정 최고의 전문가는 바로 대통령이다. 지긋지긋한 여의도 정치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국가 지도자가 수호해야 할 철학과 이념, 가치까지 내려놓아서는 안된다. 대중민주주의가 전지(全知)하지 않다는 사실을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선주자들의 들뜬 약속과 집권을 위한 비이성적 과열을 냉정한 국가이성의 틀 안에서 재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임기 말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그 고단한 여정이 언젠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국민들을 안도케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