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는 거장 반열에 드는 감독이지만 30년 넘게 도망자 신세다. 2003년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됐는데도 체포될까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44세였던 1977년 13세 소녀모델 사만다 게이머를 만난 게 화근이었다. 아내가 미치광이들에게 살해된 후 방황하던 중 사만다에게 성적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날 샴페인에 수면제를 섞어 마시게 한 다음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이후 폴란스키는 ‘롤리타 신드롬’, 또는 ‘롤리타 콤플렉스’의 상징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롤리타 신드롬은 러시아 출신 미국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서 유래했다. 30대 후반의 주인공 험버트가 12세 의붓딸 롤리타와 어울리다가 스스로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1955년 탈고했으나 미국 출판사들이 출간을 거부하는 바람에 프랑스에서 먼저 나왔다. 얼마 후 미국에서 출판되자 작품의 도덕성 문제를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1962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도 소녀 배우의 누드장면으로 다시 논란을 빚었다.

《롤리타》라는 작품 자체는 ‘아동 포르노’와는 좀 거리가 있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롤리타,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엽기적 애정행각보다는 퍼즐에 가까운 언어적 유희를 즐긴다. 줄거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지만 나름대로 구조적 치밀함을 갖췄다. 험버트에 대해 인간적 연민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어린 의붓딸과 함께 모텔을 전전하는 내용만 놓고 보면 ‘페도필리아(pedophilia·소아기호증)’의 한 유형이다.

우리도 강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영국 인터넷감시재단 조사에서 한국은 세계 아동포르노 유통물량의 2.16%를 생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러시아 일본 등에 이어 6위다. 성인전용 PC방에는 아동포르노가 넘쳐나고, 페도필리아 성향의 인터넷 카페도 수십곳이라고 한다.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대다수가 아동포르노에 중독됐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경찰이 아동포르노 추적 전담팀을 신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유통 경로를 차단하는 건 물론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몰수하기로 했다. 아동포르노를 보관만 해도 처벌할 방침이라니 전에 없이 강도 높은 대책이다. 롤리타 신드롬 확산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만 끔찍한 아동 성폭행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럴 듯한 대책을 내놓았다가 관심이 잦아들면 묻히곤 했던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