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유럽 상장기업 이사회의 일정 비율을 여성으로 채우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법안은 10월 중으로 EU에 공식 제출될 예정이다.

FT가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EU는 27개 회원국 내 상장기업들이 2020년까지 비상임이사의 40%를 여성으로 채우지 못할 경우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법안엔 직원이 250명 이상이거나 연 매출이 5000만유로(약 174억원)를 넘는 상장기업은 매년 이사회 성비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요구 비율을 채우지 못한 기업은 벌금을 물거나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EU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이사회 성비 불균형을 시정하기를 기다렸지만 개선 속도가 느려 법제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초안에서 EU는 “기업들의 이사회 성비 개선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다”며 “회원국마다 개선비율도 모두 제각각”이라고 지적했다. EU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유럽 대형 상장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은 평균 13.7%다.

법안에 찬성하는 EU 국가가 많아 통과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노르웨이 등은 이미 자체 입법을 통해 여성 이사 할당제를 도입했다. 영국과 스웨덴 등이 반대하고 있지만 법안이 다수결로 채택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거부권을 행사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예상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 비율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EU 최대 재계 단체인 비즈니스유럽의 페드로 올리베이라 법률고문은 “일률적으로 이사회 성비를 강제하는 것은 기업과 주주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EU가 이사회 기능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 이사 할당제는 지난 10여년간 많은 유럽국가에서 추진돼 왔다. 2003년 세계 최초로 할당제를 입법화한 노르웨이는 여성 이사 비율이 당시 6%에서 지난해 42%까지 높아졌다. 프랑스도 지난해 할당제 도입으로 여성 이사 비율을 1년 만에 22%까지 10%포인트 끌어올렸다.

이탈리아도 현재 6%에 불과한 여성 이사 비율을 2015년까지 33%로 높이겠다는 방침을 지난 6월 밝혔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