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체들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고 극대화하는 시장경제 질서를 확고하게 자리잡게 하는 동시에 열린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건국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해결한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68·사진)가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신간 《경제는 정치다》(로도스)를 통해서다. 오는 12월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가 유력시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원로로서의 경제조언이어서 주목된다.

절대 논리가 없이 타협과 조정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경제는 곧 정치’라고 여기는 그는 1960년대 개발경제에서부터 ‘안철수 현상’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 나타난 시대 흐름의 큰 줄기를 되짚는다. 이어 한국 경제가 처한 중산층 붕괴, 양극화, 기회의 불균형 같은 문제의 실상과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근의 ‘안철수 현상’과 관련해서는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던 변화의 열망이 폭발한 것”이라며 “젊은 세대의 누적된 욕구가 새로운 시대와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중심 세력은 언제나 40대였다며 “1960년대 식 경제발전 체제를 창의적이고 열린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중심세대 교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전략은 경제민주화를 유지하면서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방식으로 짜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스스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창조경제’와 ‘창의기업’ 체제를 확립해야 하며, 희소 자원이 된 인재를 육성하면서 출발선의 불공정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출발선을 같게 해주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법인들이 대기업의 특수관계인이 돼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방법도 제시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의 계열사 부당지원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하고, 기업 내 사외이사의 역할도 재정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환시장을 개편해 실물과 관계없이 환율의 급변동을 부추기는 투기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를 위해 투기성향이 짙은 역외선물시장(NDF)을 손질하고 금융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토빈세의 도입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복수의 통화가치를 감안해 원화가치가 결정되도록 하는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를 도입해 시장의 일시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펀더멘털’에 따라 환율이 결정되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창의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권력구조를 바꿔 대통령과 내각을 분리해 연립정부의 길을 열어놓는 등의 방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