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들 권익단체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박상대)가 월권(越權) 논란에 휩싸였다. 법적 근거 없이 정부 예산으로 임금을 주는 출연연구기관 인력을 데려다 정책연구소를 운영하는가 하면 정당들에 정책을 건의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과학계 전체 요구인 양 발표하고 있어서다.

과총은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 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인력 파견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정책연구소를 만들며 KISTEP의 부원장급 책임연구원인 이장재 수석전문위원을 파견받았는데 이를 1년 연장하는 내용이다.

KISTEP 고위 관계자는 “과학 분야 인력 교류를 통해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파견을 연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출연연구기관 인력을 타당한 근거 없이 민간 기관에 보내는 게 적정한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부원장급 인력에게 현장 교육을 시킨다는 명분이 옹색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으로 민간 기관인 과총의 인건비를 보태주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파견 기간 중 이 전문위원의 인건비는 KISTEP가 80%를 부담하고 과총은 20%만 낸다.

KISTEP는 국과위와 교과부의 정책 입안을 돕는 기관으로 인력이 부족해 내년에도 10여명을 더 충원할 예정이다. 이런데도 고위 인사를 권익단체에까지 파견하는 것은 방만한 인력 운영이라는 지적이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민간의 목소리를 내야 할 단체가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을 파견받아 연구하는 게 합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과위 관계자도 “인력이 부족해 매년 예산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는 출연연구기관이 민간 권익단체에 인력을 보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진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과총의 성격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780여개 학술단체가 모인 민간 기관이지만 관행적으로 교과부 1급 공무원 출신이 사무총장을 맡아오면서 막강 파워를 발휘하고 있어서다. 현 이상목 사무총장도 2010년까지 교과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번 파견이 자리 나눠먹기식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사무총장은 “대학 등 민간에서 과기 정책 전문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불가피하게 KISTEP에 파견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총은 최근 정당들을 대상으로 ‘차기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제’를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과학단체들과 불협화음을 냈다. 지난 5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등과 공동으로 기자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과기 전담 부처 부활 등 합의하지 않은 내용을 과학계 전체의 의견처럼 발표한 것.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과기부 부활에 찬성하지 않는 공학한림원이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해 이 사무총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과학계에 이런저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인데 내용이 확정된 것처럼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