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가 서울대 국제대학원이 지난 10일 주최한 ‘제36회 아시아와 세계 공개 강좌’에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노나카 교수는 이날 ‘지식창조 전략: 지속 가능한 혁신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기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회사 조직원들이 비전과 공동선(善)을 공유해야 한다”며 “윤리나 가치관을 무시하는 기업은 최근 월가 시위와 같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특정 1인에 집중되는 리더십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이 소신껏 경영을 수행하는 조직적인(collective) 리더십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앞으로 기업에서는 ‘중간관리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나카 교수는 강연에 앞서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부원장과 대담을 가졌다.

▶김현철 부원장=강연 주제를 기존에 강조해 온 ‘지식창조경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혁신’으로 한 이유는.

▶노나카 교수=지식창조 이론은 원래 일본 기업의 혁신과 신기술 개발의 절차를 이론화한 것이다. 지식창조 이론에서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암묵지(暗默知)’와 ‘형식지(形式知)’가 상호작용을 거듭해 개인의 암묵지가 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직 전체의 혁신을 실현하자는 뜻이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한데, 혁신을 위해서 개인이 갖고 있는 주관을 객관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하면 개인의 주관도 더욱 풍부해지고,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기게 된다. 피터 드러커가 ‘21세기는 지식사회’라고 말했는데, 결국 지식이라는 정량화하기 어려운 재화(goods)를 창조의 중심 과정에 편입시킬 수 있는 경제 이론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김 부원장=암묵지와 형식지란 무엇인가.

▶노나카 교수=지식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암묵지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을 말한다. 형식지는 개념화되고 언어로 표현된 이론적 지식이다. 암묵지는 존재론, 형식지는 인식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암묵지는 직관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개념화가 안 되면 공유되지 않는다. 즉 형식지와 암묵지는 상호작용을 거듭할 때 지식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김 부원장=형식지와 암묵지가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능력이 리더십이란 얘기인가.

▶노나카 교수=그렇다. 최근에는 형식지와 암묵지의 상호교감을 위해선 윤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가치관, 공동선(善)이라는 보다 큰 구상이 없으면 형식지와 암묵지가 상호작용하기 힘들다. 리더는 기업이 지향하는 비전과 공동선을 제시하고, 조직의 지식 창조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다. 이런 리더를 ‘현명한(wise) 리더’라고 부른다. 나는 이 같은 리더십을 실천적 지혜를 겸비한 ‘사려 깊은(prudent)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가 사회의 공동선과 일치할 때 구성원 전체에 동기가 부여되고 기업의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김 부원장=오늘날 윤리나 가치관이 기업의 리더십에서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노나카 교수=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도 ‘월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시위가 일어났다. 공동선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영미권의 경영이론은 매우 과학적이고 분석적이지만, 가치관을 따지지 않는다.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신고전파 경제학이다. 이제 세상을 위한다는 가치관이 결여된 경영학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게 됐다. 동양철학이나 일본으로 치면 ‘무사도(武士道)’와 같은 개념이 필요하다. 앞으로 자본주의는 리더 개인에게만 의존하기보다는 조직적인 리더십으로 변해갈 것이다.

▶김 부원장=조직적인 리더십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

▶노나카 교수=‘디스트리뷰티드(distributed) 리더십’이라고도 부른다. 리더십이 특정 한 명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 중간관리자로 폭넓게 분산되는 형태를 말한다. 상명하달의 ‘톱다운(top-down)’ 방식도 아니고, 민주적인 ‘보텀업(bottom-up)’ 방식도 아니다. 메이지(明治)유신 당시의 사무라이들이 혁신적인 중간관리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열강의 문물을 익히고, ‘서구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은 중간관리자인 사무라이였다. 일본 자동차업체 혼다가 이런 리더십을 실천한 대표적인 예다. 역대 혼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직원들에게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가 될 것을 주문했다. 누구든지 자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가꿔온 것이다. 이 같은 체제에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졌다. 도요타자동차 다이하쓰공업 후지쓰 유니클로 등 일본 기업 외에도 한국의 삼성, 중국의 하이얼, 미국의 시스코도 이 같은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다.

▶김 부원장=리더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노나카 교수=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phronesis)’, 영어로는 ‘실천적 지혜(practical wisdom)’가 필요하다. 공동선(善)을 목표로 판단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철학, 역사, 문화 등 폭넓은 교양과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서양의 비즈니스 스쿨(MBA)에선 그동안 분석 중심의 결정(decision)만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제 구성원 전체를 아우르며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최고의 선택을 하는 가치판단(judgement)이 중요해졌다. 아주 높은 수준의 암묵지를 요구받는다고 볼 수 있다.

▶김 부원장=파나소닉, 소니, 올림푸스, 샤프 등 최근 쇠락하는 일본 기업들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노나카 교수=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물건을 상품화하는 판단의 속도에서 한국 기업에 뒤처졌다. 암묵지와 형식지의 상호작용에 대해 말했는데, 이 둘의 상호작용이 일본 내에서만 한정됐던 것도 문제였다. 정보기술(IT)과 같이 상품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업계는 암묵지를 형식지로 변환하는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나 중국은 엔지니어를 일본에서 채용해 암묵지를 세계에서 통할 수 있도록 하는(형식지화)데 성공했고, 일본 제품보다 뒤처져 있던 디자인 등을 보완해 빠르게 앞서 나갔다. 일본 기업들은 또 글로벌한 상품을 뽑아내는 능력에서 뒤처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부품 메이커, 산업재 관련 일본 기업들은 아직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고, 질 높은 암묵지가 축적돼 있다.


◆노나카 이쿠지로 명예교수는…경영저서 '지식창조기업' 으로'일본의 피터 드러커' 로 불려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77)는 1995년 발간한 저서 《지식창조기업》으로 피터 드러커의 극찬을 받으며 ‘미국 최고저술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 노나카 교수는 지식창조 과정을 ‘나선형 프로세스’(spiral process)라고 설명했다.

암묵지(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주관적 지식)와 형식지(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객관적 지식)라는 두 종류의 지식이 공동화(암묵지→암묵지), 표출화(암묵지→형식지), 연결화(형식지→형식지), 내면화(형식지→암묵지)라는 네 가지 변환과정을 거쳐 지식이 창출된다는 이론이다.

이 밖에 저서로는 《세계의 지(知)를 창조하라》 《무한 혁신》 《싱크 이노베이션》 《노나카의 지식경영》 등 20여권이 있다. 그는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구루(대가) 20인’에도 선정됐다.

노나카 교수는 1958년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후지전기제조에서 근무하다 미국 UC버클리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UC버클리 지식학부 명예교수, 클레어몬트대 피터드러커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