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함께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을 차례로 맡았다. 지난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불과 5개월여 만에 민주당 대선 후보를 거머쥐었다.

문 후보는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당시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온 가난한 집안의 큰 아들이었다. 문 후보는 유년기의 가난을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가난 덕분에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웠고 ‘돈은 중요한 게 아니다’는 가치관이 자리잡았다.”(자서전 ‘운명’)

부산의 명문인 경남중·고교를 나왔다. 경남고 문과 1등이었지만 교과서보다는 소설책과 사회과학서적 등을 더 즐겨 읽었다. 고교 시절엔 술·담배를 배워 ‘문제아’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4년 장학생으로 경희대 법대에 입학한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문 후보는 1974년 유신 반대 학내시위를 주동했다. 1975년 4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사형을 당한 다음날엔 대규모 학내 시위를 이끌어 구속, 제적됐다. 석방 후엔 강제징집으로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 입대했다.

제대한 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사시 2차 합격 소식을 들은 일화는 유명하다. 1년 뒤 대학 때부터 7년간 만나 온 김정숙 여사와 결혼한다. 문 후보는 김 여사와의 연애사를 군대·감옥·고시 공부를 위해 들어간 절까지 이어진 ‘면회사’라고 추억한다. 그는 “내가 경희대에 간 이유는 오로지 아내를 만나기 위함이었나 보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경희대 음대 출신이다.

문 후보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유신 반대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그때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당시 부산에서 유명한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두 사람은 여섯 살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지냈다. 후에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문 후보의 청와대 생활이 시작됐다. 문 후보는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을 거치며 노무현 정부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2007년 3월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청와대의 부름을 받을 땐 ‘진심으로 맡고 싶지 않았지만 우짜겠노, 대통령과 마지막을 함께하자’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수락했다.

2007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 문 후보는 양산의 시골집에 돌아가 칩거했다. 이런 문 후보를 ‘정치의 길’로 이끈 것은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였다. 문 후보는 상주 역할을 하며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2011년에는 혁신과통합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올해 4·11 총선에선 부산 사상에 출마해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