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초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서울 서초동 금융위원회 사무실로 민유성 산업은행장을 불렀다. 비서의 안내를 받고 위원장 방으로 들어온 민 행장과 가벼운 악수를 나눈 전 위원장은 자리에 앉자 마자 용건부터 꺼냈다. “아무래도 리먼브러더스 인수 추진을 중단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국내외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잠재 부실 규모가 불확실한 리먼을 인수하는 건 무리인 것 같아요.”

완곡한 어법이었지만, 어조는 분명했다. 민 행장으로선 아쉬움이 남았다. 그해 6월 산업은행장 취임 후 3개월간 미국 4위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의 인수를 추진했던 터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국책은행 산은의 주인인 정부가 하지 말라는 걸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 위원장은 산은의 ‘리먼 인수 프로젝트’가 중단됐음을 시장에도 흘렸다. 9월8일 기자들과 만나 “국내외 금융시장의 특수한 여건을 감안하면 이 시점에서 산은의 리먼 인수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의 발언은 ‘산은의 리먼 인수 포기’로 해석됐다. 그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리먼 주가는 14.15달러에서 7.79달러로 45% 폭락했다. 산은은 9월10일 리먼 인수 협상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로 벼랑 끝에 선 리먼을 한국의 산은이 인수하려다가 포기한 건 국제국융시장에선 ‘사건’이었다. 산은이 발을 빼고 다른 인수후보들도 손을 내밀지 않자 리먼은 추락했다. 자칫 산은이 리먼을 인수했다면 함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리먼 출신 민 행장의 아이디어

산은의 리먼 인수 추진은 리먼 출신인 민 행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는 게 정설이다. 2008년 5월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였던 민 행장은 리먼에 투자할 한국 자본을 찾고 있었다. 그의 회고. “리먼은 처음엔 경영권을 매각하지 않고, 단순히 외부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생각이었다. 나는 그때 하나금융지주와 한국투자공사(KIC) 등과 접촉하며 리먼 투자를 타진했다. 그러던 중 산업은행장에 내정됐다. 산은이라면 리먼을 인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리먼 본사에 ‘경영권을 넘기는 조건이라면 산은이 인수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건의해 보겠다’고 했다. 의외로 ‘좋다’는 답이 왔다.”

민 행장은 취임 후 전 위원장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전광우(현 국민연금 이사장)의 증언. “민 행장이 찾아와 ‘리먼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인수를 검토해봐도 되겠느냐’고 묻더라. 잘 되면 산은에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산은보다 자산이 5배나 큰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속력 있는 약속은 섣불리 하지 말라’고 했다. ‘가볍게 데이트만 시작해 보라’고 했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 설령 결혼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배우는 게 많이 있으니까.” 당시 야당 등 일각에서 제기한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산은이 리먼 인수에 나섰다”는 의혹에 대해선 핵심 관계자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다.

어쨌든 한국 정부가 부정적이지 않다는 보고를 받은 리처드 풀드 리먼 회장은 적극적으로 나왔다. 7월 초 민 행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산은이 리먼 주주들로부터 지분 51%를 공개매수해 달라”고 제안했다. 산은이 매수 기간·가격·수량 등을 공개하고 주식을 장외에서 사라는 것. 풀드 회장이 제시한 인수가격은 주당 20달러를 넘었다.

◆‘6달러 vs 12달러’ 못좁혀

민 행장은 곧바로 인수·합병(M&A) 전문사인 페렐라와인버그파트너스와 자문계약을 맺었다. 산은엔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7월 말 뉴욕 맨해튼 리먼 본사로 실사팀을 파견했다. 당시 실사팀 관계자의 회고.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내심 리먼의 부실 규모가 크지 않기를 빌었다. 그런데 실상을 보니 예상보다 부실이 컸다. 리먼과 1차 협상을 벌였지만 부실 규모에 대한 시각 차만 확인했다.”

리먼이 산은에 다시 연락을 취한 때는 8월 중순. 리먼은 새로운 인수 방식을 제안했다. 주주들의 기존 주식을 사지 말고 리먼이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리먼으로선 당장 ‘뉴머니(new money)’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민 행장은 고민 끝에 부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인수 방안을 역제안했다. ‘리먼의 부실자산을 모아 배드뱅크(bad bank)로 만들고, 나머지 우량 자산만 있는 굿뱅크(good bank)를 산은이 인수한다. ’ 다시 민유성의 회고. “우린 굿뱅크와 함께 리먼이 갖고 있는 뉴버그버맨이라는 자산운용회사를 합쳐 주당 6.4달러, 총액으론 60억달러(약 6조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리먼은 주당 12~14달러를 요구했다. 가격을 놓고 풀드 회장과 줄다리기를 했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미국 정부 나서자 “위험하다” 포기

시간은 리먼 편이 아니었다. 산은과 리먼의 협상이 길어지면서 정부 내에선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국내 금융시장에 달러가 부족해 외환위기설이 도는 마당에 산은이 수십억달러를 리먼 인수에 쓰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었다. 한국 정부가 점차 부정적으로 돌아서자 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이 나설 태세였다. 산은 관계자의 증언. “폴슨 장관은 한국 정부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면 자신이 기꺼이 금융위원장에게 전화하겠다고 했다. 미국 정부도 급했던 것이다. ”

그러나 미국 정부까지 나서려 하자 한국 정부는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전광우의 증언. “폴슨 장관이 나에게 직접 전화까지 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리먼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이 딜에 정부가 개입하면 부실 리스크뿐 아니라 정치적 리스크도 생긴다. 더 이상 나가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10일 산은의 ‘리먼 인수 협상 중단’ 발표는 결과적으로 리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희망이 없다고 본 전 세계 은행들은 리먼에 제공했던 400억달러의 크레디트라인(대출한도)을 모두 끊었다. 리먼은 결국 9월15일 파산했다.

리먼 인수한 日 노무라 '적자 허덕'…産銀 인수했다면 수조원 날릴뻔

산업은행이 인수를 포기한 뒤 파산한 리먼브러더스는 영국 바클레이즈은행과 일본 노무라증권에 분할 매각됐다. 바클레이즈는 리먼의 북미지역 투자은행과 거래 부문, 뉴욕 본사 건물을 인수했다. 노무라증권도 일본, 홍콩, 호주에 있는 리먼의 아시아지역 프랜차이즈와 함께 유럽과 중동의 투자금융·자산경영 부문을 사들였다.

두 회사의 리먼 인수 이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바클레이즈는 리먼 인수라는 ‘도박’을 통해 유럽 최대 은행으로 부상했다. 반면 노무라는 최근까지 9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과 조직 융합 등에서 실패했다는 평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이 리먼을 인수했다면 노무라증권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글로벌화한 노무라도 실패한 미국계 은행 인수를 산은이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인력이나 조직문화 면에서 아시아 기업이 미국계 은행을 경영하는 건 말처럼 간단치 않다는 지적이다.

만약 산은이 리먼을 인수하고, 그게 실패로 돌아갔다면 산은은 수조원의 국부(國富)만 날릴 뻔했다. 또 곧 파산할 리먼을 산은이 떠안았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국가’로 낙인찍혀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산은의 리먼 인수 추진을 중단시킨 건 잘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자신한다. “낚시를 하다가 물고기를 놓치면 누구나 월척(big fish)이었다고 하는 법이다. 하지만 리먼의 부실과 자산 규모를 감안했을 때 산은은 가라앉는 타이타닉을 구하기엔 너무나 작은 배였다. 리먼을 구하려고 했더라면 아마 함께 침몰했을 것이다. 또 리먼을 인수했더라면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 과정이 훨씬 더 복잡했을 거다. 우리가 금융위기를 조기에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과정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옳은 결정을 내렸다.”

반면 민유성 전 행장은 여전히 리먼 인수 포기에 대해 아쉽다고 회고했다. “산은이나 국가적으로 큰 기회였다. 리먼의 부실자산을 제외한 나머지 우량자산을 인수한다는 딜의 구조를 시장에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갖지 못해 위험하게 비쳐진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금융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였다.”

keyword 리먼브러더스

2007년부터 불거진 미국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결국 파산한 글로벌 투자은행(IB). 미국의 IB 랭킹으로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어 4위였다. 1850년 설립돼 글로벌 주식 채권 인수 및 중개,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 중개, 사모펀드 운용, 프라이빗 뱅킹 등을 해왔다. 미국 국채 시장의 주 딜러이기도 했다. 노이버거 베르만, 오로라 론서비스, SIB모기지, 리먼브러더스은행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었다.

2008년 9월15일 뉴욕시간 새벽 2시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했을 당시 부채 규모는 6130억달러. 세계 17위 경제 국가인 터키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었던 건 물론이다. 리먼이 쓰러지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게 리먼의 파산이었다.

특별취재팀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