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보다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청원 전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은 17일 서울 역삼동 기술센터에서 ‘쌓여만 가는 방사성 폐기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제56회 한국공학한림원-한국경제 토론마당’에서 이같이 말했다.

조 전 이사장은 과학기술부 원자력국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참사관 등을 지낸 전문가다.

그는 “방사선 방출이 낮은 저준위 폐기물은 경주 방폐장에서 처리할 계획이지만 핵 연료봉 등 고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가 30년째 미제로 남아 있다”며 “폐기물을 원자력발전소에 임시저장한 후 기술 발전을 기다려보는 전략(wait and see)에서 벗어나 처리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에 대해 국민과 소통하는 공론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범사례로 원전 정책을 명확히 만들어 폐기물 영구처리에 나선 핀란드, 스웨덴의 사례를 들었다. 원전을 추가 건설하기로 결정한 핀란드는 국민들을 설득해 핵연료봉을 땅에 묻는 영구처분장을 마련했고, 스웨덴은 핵발전 포기를 명확히 선언하는 대신 기존에 나온 폐기물을 영구처분하기로 했다.

박광헌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최근 미국 워싱턴DC 법원이 사용후 핵연료봉 임시저장 기간을 30년에서 60년으로 연장하는 것에 제동을 걸면서 미국 내 원전 신규 건설과 재사용 허가 면허 발부가 중단됐다”며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원전을 신규 건설하고 있는데 더이상 두 문제를 떼어놓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환경부장관을 지낸 김명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고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는 미국, 일본 등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지만 더이상 이렇게 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며 “다만 공론화에 나서기 전에 지금까지 제각각 목소리를 냈던 정부부처, 산하 기관, 과학단체 등이 폐기물 처리에 대한 기본적인 정책 방향을 먼저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핵연료봉 재처리 등을 통해 폐기물량을 줄이는 기술을 원활히 개발할 수 있도록 2014년 재협상하는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 교수는 “사용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해 부피를 10분 1 이상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는데 미국의 감시를 받고 있어 진척이 더디다”며 “미국을 설득하려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원은 “미국과는 2020년까지 재처리에 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등 어떤 범위에서 양국이 협력할지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