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도 몰랐던 권오갑 사장의 '100세 모친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인사이드 Story - 어머니 마지막 길 조용히 보낸 CEO의'사모곡'
직계 가족만 참석
"여러 사람 부담 안되게…", 사내 인트라넷에도 안 올려
어머니께 배려심 배워
사장 전용차, 직원 웨딩카로…임직원 급여 1% 나눔 기부
직계 가족만 참석
"여러 사람 부담 안되게…", 사내 인트라넷에도 안 올려
어머니께 배려심 배워
사장 전용차, 직원 웨딩카로…임직원 급여 1% 나눔 기부
“몸이 안 좋아 오늘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 다른 참석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지난 14일 이른 아침,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 열공급 설비 준공식을 준비하던 책임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사진)이었다. 1000억원을 투자해 가동하는 설비 준공식에 그것도 행사 당일 불참을 전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유난히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주말이 지나고 17일 아침 본부장 회의에서야 권 사장은 “사실 14일 새벽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며 “가족들과 장례를 치렀다”고 말했다. 본부장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란 술렁거림이 일었다. 평소 모친에 대한 지극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0세로 천수를 누리신 어머니를 조용히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다”는 권 사장의 다음 말에 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장의 뜻을 헤아려 마음으로 조의를 표했다.
권 사장의 모친상은 사내 인트라넷에도 공지되지 않았다. 늘 옆에서 사장 일정을 챙기는 비서조차 모르게 상을 치렀다. 그는 “어머니 가시는 날 날씨가 참 좋아서 마음이 놓였다”며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되레 담담하게 얘기했다. 장례는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자택에서 직계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치렀다. 18일에는 삼우제를 지내고 바로 출근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한 위인이면 모두가 조문을 하고 사정이 어려우면 나서서 십시일반 도움을 줘야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여러 사람 신경쓰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권 사장의 뜻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3남2녀 중 막내로 판교 부농(富農) 집안에서 자란 권 사장은 늘 작고 흠집 있는 과일을 먹었다. 어머니가 크고 좋은 과일은 이웃과 어른들께 먼저 챙겨드렸기 때문이다. 마흔이 다 돼서 본 귀한 아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어머니로부터 그는 배려심과 더불어 시어른을 모시고 고된 농사일에 일꾼들까지 챙기는 부지런함 및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건강을 비는 정성을 몸과 마음으로 익혔다.
힘든 일에 몸 약한 어머니가 아프면 어떡할까 전전긍긍하던 소년, 고된 해병대 훈련에 2주일마다 오는 어머니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던 청년은 현대중공업 입사 33년 만인 2010년 현대오일뱅크 사장에 올랐다. 권 사장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족 경영으로 접목했다. 강한 추진력으로 사업을 이끌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세심한 배려로 직원들을 챙겼다.
사장 전용차로 나온 에쿠스를 직원들의 결혼식과 가족의 장례용 차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줬고 매주 새벽 5시 대산공장으로 출발해 현장 임직원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전 사업장 금연 선언으로 직원 건강을 챙기고 대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임직원들이 급여를 기부해 1% 나눔재단을 만들었다. 그의 진심에 노조는 2년 연속 임금위임과 무파업 선언으로 화답했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보내도록 해주느냐도 회사의 큰 책임 중 하나”라는 경영 철학을 갖고 있는 권 사장은 늘 직원들에게 “회사는 돈만 버는 곳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상을 당한 지 며칠되지도 않았고 별일 아닌 일이 기사화되는 게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끝내 고사했다.
7월13일 제21회 다산경영상을 받은 권 사장은 영광의 순간,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으로 소감을 밝혔다.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올해 100세를 맞은 어머니의 따뜻한 심성 덕분입니다.”
냉혹한 경영의 세계에서 온기를 간직할 수 있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권 사장의 사모곡은 조용히 깊은 울림을 남겼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지난 14일 이른 아침,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 열공급 설비 준공식을 준비하던 책임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사진)이었다. 1000억원을 투자해 가동하는 설비 준공식에 그것도 행사 당일 불참을 전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유난히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주말이 지나고 17일 아침 본부장 회의에서야 권 사장은 “사실 14일 새벽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며 “가족들과 장례를 치렀다”고 말했다. 본부장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란 술렁거림이 일었다. 평소 모친에 대한 지극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0세로 천수를 누리신 어머니를 조용히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다”는 권 사장의 다음 말에 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장의 뜻을 헤아려 마음으로 조의를 표했다.
권 사장의 모친상은 사내 인트라넷에도 공지되지 않았다. 늘 옆에서 사장 일정을 챙기는 비서조차 모르게 상을 치렀다. 그는 “어머니 가시는 날 날씨가 참 좋아서 마음이 놓였다”며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되레 담담하게 얘기했다. 장례는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자택에서 직계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치렀다. 18일에는 삼우제를 지내고 바로 출근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한 위인이면 모두가 조문을 하고 사정이 어려우면 나서서 십시일반 도움을 줘야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여러 사람 신경쓰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권 사장의 뜻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3남2녀 중 막내로 판교 부농(富農) 집안에서 자란 권 사장은 늘 작고 흠집 있는 과일을 먹었다. 어머니가 크고 좋은 과일은 이웃과 어른들께 먼저 챙겨드렸기 때문이다. 마흔이 다 돼서 본 귀한 아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어머니로부터 그는 배려심과 더불어 시어른을 모시고 고된 농사일에 일꾼들까지 챙기는 부지런함 및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건강을 비는 정성을 몸과 마음으로 익혔다.
힘든 일에 몸 약한 어머니가 아프면 어떡할까 전전긍긍하던 소년, 고된 해병대 훈련에 2주일마다 오는 어머니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던 청년은 현대중공업 입사 33년 만인 2010년 현대오일뱅크 사장에 올랐다. 권 사장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족 경영으로 접목했다. 강한 추진력으로 사업을 이끌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세심한 배려로 직원들을 챙겼다.
사장 전용차로 나온 에쿠스를 직원들의 결혼식과 가족의 장례용 차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줬고 매주 새벽 5시 대산공장으로 출발해 현장 임직원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전 사업장 금연 선언으로 직원 건강을 챙기고 대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임직원들이 급여를 기부해 1% 나눔재단을 만들었다. 그의 진심에 노조는 2년 연속 임금위임과 무파업 선언으로 화답했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보내도록 해주느냐도 회사의 큰 책임 중 하나”라는 경영 철학을 갖고 있는 권 사장은 늘 직원들에게 “회사는 돈만 버는 곳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상을 당한 지 며칠되지도 않았고 별일 아닌 일이 기사화되는 게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끝내 고사했다.
7월13일 제21회 다산경영상을 받은 권 사장은 영광의 순간,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으로 소감을 밝혔다.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올해 100세를 맞은 어머니의 따뜻한 심성 덕분입니다.”
냉혹한 경영의 세계에서 온기를 간직할 수 있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권 사장의 사모곡은 조용히 깊은 울림을 남겼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