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상생’, 이명박 정부의 ‘동반’에 이어 차기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가 기업정책을 지배할 모양이다. 대기업들은 출자, 지배구조, 심지어 기업 내부 경영에 관한 사항까지 더 강한 정부 개입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반면 정치권이 대기업의 대척점에 있다고 간주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와 혜택 공약은 마구 쏟아진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특혜’와 ‘규제’라는 극명한 대칭성이 더욱 확대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현재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160여개 혜택이 없어지고 190개 규제가 새로 생겨난다는 게 중견기업들의 불만이다.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이 아니면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은 중견기업들이 경제민주화에 박수를 쳐야 할지, 반대 궐기를 해야 할지 헷갈려한다. 그러나 중소기업 보호는 더 확대하고, 대기업 규제는 더 강화하는 게 경제민주화라면 중견기업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상생' '동반' '경제민주화'

상생이니 동반이니 하는 개념들이 등장했을 때 일단의 경영·경제학자들은 ‘생태계’ 운운하며 이를 정당화하느라 바빴다. 경제민주화가 등장하자 관변학자들이 또 생태계를 주장한다. 재미있는 건 이들이 한결같이 인용하는 게 실리콘밸리라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처럼 창조적 혁신 생태계로 가자는 것이다. 특혜와 규제의 생태계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생태계를 너무 좋아하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진화 원리를 파헤친 찰스 다윈에게 누구보다 감동하고 흥분했던 사람 중에는 카를 마르크스도 들어있다. 그의 눈에는 당시 영국 사회가 온통 정글처럼 비치면서 명쾌하게 설명이 됐던 모양이다. 다윈은 자신의 연구가 다른 분야에서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마르크스가 거기서 무슨 힌트를 얻었는지 인간 사회의 조화롭고, 이상적인 생태계를 꿈꾸면서부터 공산주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있다. 인위적 설계론자들의 위험성이다.

'중소기업법'은 성역인가

‘중견기업육성론’을 들고 나온 지식경제부만 딱하게 됐다. 정치의 높은 벽 때문에 규제완화를 외치지 못하니 중견기업육성책의 핵심이 중소기업 특혜의 연장이 되고 말았다. 특혜는 늘 그렇듯 ‘관변기업’ ‘좀비기업’ 양산의 악순환만 지속시킬 뿐이다. 중견기업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성장의 ‘다리’가 아닌 ‘단절’을 상징하는 본질적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지경부가 용기가 있다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큰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의 위험성부터 경고하라. 한국을 그렇게 부러워하는 대만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정치권이다. 누구는 “삼성에 국가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한다. 기업은 언제든 망할 수 있다. 삼성이 망하고 안 망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그렇게 커지려는 기업이 더는 안 나올까봐 그게 두려운 것이다.

할 일은 또 있다. ‘중소기업기본법’을 ‘기업성장법’으로 바꿔라. 중소기업기본법이 농업보다 더한 성역이 된 지 오래다. 법 목적에 들어간 ‘성장’이란 말은 허울일 뿐이다. 큰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독일형 히든 챔피언은 안 보이고 성장을 기피하는 이탈리아형 중소기업들만 우글거린다. 이런 ‘반(反)성장’법, ‘역(逆)성장’법 아래서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거란 기대는 그야말로 허구다. 중소기업이라고 무조건 혜택을 주면 성장을 자극할 수 없다.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하면 창업 후 일정 기간으로 못을 박는 식의 ‘일몰제’로 가야 한다. 규모별 기업정책은 아예 폐기하는 게 맞다.

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