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 경영평가에 서민대출 실적을 반영하겠다고 한다. 경영평가 항목에 사회적 책임 조항을 신설해 대출을 많이 해주는 은행에는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서민금융 담당 직원에 대해서는 대출금 상환이 연체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다. 대출 부실이 생기더라도 뒤를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서민들이 원하는 자금을 대주라고 은행들 등을 떠미는 형국이다.

금감원의 고민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이미 서민금융 부실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서민금융인 햇살론은 이미 연체율이 7% 수준까지 치솟았다. 처음부터 갚을 생각없이 일단 대출을 받고 보자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탓이다. 빚을 제때 갚지 않는 채무불이행이 최근 1년 사이에 24% 가까이 늘었다는 게 신용정보업계의 분석이다. 그런데도 서민대출을 확대해야 한다며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금감원이다. 햇살론만 해도 정부 보증비율을 95%로 올리고 금리는 연 8~11%로 낮췄다. 미소금융 새희망홀씨 등 다른 서민금융도 대출요건 완화, 대출서류 간소화 등 특전이 잇따른다. 대출을 받는데 연체기록은 문제도 안 된다. 신용도가 낮을수록 높은 이자를 적용하는 게 금융의 기본원칙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상환능력이 떨어지는데도 낮은 이자를 적용하게 되면 대출수요가 급증하고 그에 따라 연체 역시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런 판에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관리 감독해야할 금감원이 급기야 대출부실 문제가 생겨도 눈을 감아주겠다고 한다.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면서 오히려 서민들의 빚을 늘리려고 드는 형국이다.

금융정책의 위기다. 정부가 서민금융을 살리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지만 정작 대표적인 서민금융회사인 저축은행은 살 길이 막연하다고 호소하는 상황이다. 서민금융정책이 없으니 저축은행이 도산해도, 서민금융이 안 돼도 은행을 해결사로 불러내는 은행동원령만 남발된다. 그러는 사이에 금융리스크는 커져만 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 감독을 강화하자고 외쳤던 것을 벌써 잊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