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통계서 착안한 '747'…정책팀 반대했지만 지승림에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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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史 MB노믹스 (7) '747공약'의 탄생
2005년 '한국 GDP 10위' 오류
강만수가 '7대 강국론' 입안…MB 캠프서 '747' 로 업그레이드
류우익·윤건영 등 학자그룹 "비현실적 목표" 주장했지만
홍보라인 "이미지 좋다" 강행
2005년 '한국 GDP 10위' 오류
강만수가 '7대 강국론' 입안…MB 캠프서 '747' 로 업그레이드
류우익·윤건영 등 학자그룹 "비현실적 목표" 주장했지만
홍보라인 "이미지 좋다" 강행
“대한민국호(號)가 10년째 항로를 잃었고, 더 벗어나면 희망의 길로 되돌아올 수 없는 위기에 처합니다. 이제 바른 항로를 찾아내고 쾌속 항진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서려 합니다.”
2007년 3월1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만5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한 출정식에서 이 전 시장은 경제공약 비전으로 ‘대한민국 747’을 제시했다. 5년간의 대통령 임기 중 ‘연평균 7% 경제성장’을 달성해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의 ‘7대 경제강국’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반(反)시장정책에 피로감을 느끼던 국민들에게 이명박 후보의 ‘대한민국 747’은 비상하는 보잉747 점보기를 연상시키며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제대통령감’이란 이명박의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졌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747’은 이 후보의 대표 경제공약이 됐다. ‘이명박 경제정책=747’이란 등식도 성립했다. 이렇게 ‘MB노믹스’의 공식 브랜드가 된 ‘747 공약’은 사실 틀린 통계에서 비롯됐다.
○‘747’은 이륙하는 보잉기 연상
2006년 4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핵심 브레인으로 이 시장의 대선 출마를 돕던 강만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은 모 경제신문을 넘기다가 한 기사에 시선을 멈췄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가 됐다’는 기사였다. 강만수의 회고. “재정경제부가 분석한 2005년 기준 국가별 경제규모(GDP·국내총생산)에서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10위가 됐다는 보도를 봤다. 한국 앞엔 이탈리아(7위) 캐나다(8위) 스페인(9위)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올랐는데 경제라고 못할 게 있나.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7위 경제강국이 되는 걸 대선 공약 비전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강만수의 ‘7대 강국론’은 이명박 캠프 참모들의 손을 거쳐 ‘747’로 변신한다. 2005년 기준 명목GDP가 7930억달러인 한국이 2.2배인 이탈리아(1조7661억달러)를 따라잡으려면 단순 계산해 10년간 7%씩 성장해야 한다. 이렇게 성장하면 새 정부 집권(2008년) 10년 뒤인 2018년 한국의 GDP는 이탈리아를 앞질러 1조9000억달러에 도달한다. 이를 인구 4800만명(2005년 기준)으로 나눈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만달러가 된다. 747공약은 대략 이런 계산으로 탄생했다.
이 작업에는 채희율 경기대 교수와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채희율의 증언. “안국포럼(이명박 후보 캠프)에 있던 강 원장으로부터 747 공약의 근거와 달성 전략을 짜달라는 요청을 받아 작업했다. ‘글로벌 인사이트’라는 국제 전망기관의 나라별 중·장기 성장률 전망을 데이터로 삼았는데, 처음엔 숫자가 딱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물가상승률을 일부 조정해 숫자를 747로 맞췄다.”
그런데 이 공약의 근거가 됐던 2006년 4월27일자 신문 보도의 통계는 오류였다. 2005년 GDP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0위가 아니라 12위였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보면 GDP 규모로 7위 이탈리아, 8위 스페인, 9위 캐나다, 10위 인도, 11위 브라질에 이어 한국은 12위에 랭크돼 있었다. 당시 고속 성장하던 브릭스(BRICs) 국가인 인도와 브라질이 한국 앞에 있었다. 747 공약은 이렇게 잘못된 통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결함을 안고 있었다.
○MB가 홍보팀 손 들어줘
747 공약은 이명박 캠프 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빚었다. 캠프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증언. “강 원장을 비롯한 관료그룹에서 만들어온 747 공약에 대해 경제학자 그룹에선 반대가 심했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08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캠프의 정책은 강 원장이 이끈 관료그룹, 류우익 서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던 국제정책연구원(GSI), 백용호 교수가 조직한 바른정책연구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윤건영 한나라당 의원이 조직한 학자그룹 등에서 만들었다.
윤건영의 증언. “경제학 교수 출신 입장에서 4~5%의 잠재성장률을 가진 한국이 연간 7%씩 성장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봤다. 특히 한국처럼 민간 비중이 큰 나라에서 정부가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한다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설령 우리가 10년간 7%씩 성장한다고 해도 우리 앞에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거의 성장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어야 따라잡을 수 있다. 그게 가능하겠나.”
GSI를 이끈 류 교수도 747 공약에 반대했다. 류우익의 회고. “747 공약을 입안한 사람들은 당시 세계 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는 ‘문명사적 변혁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747이란 용어 자체를 쓰지 말자고 주장했다.”
747 공약을 둘러싼 캠프 내 논란을 잠재운 건 홍보라인이었다. GSI 정책팀장을 맡았던 당시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곽승준(이명박 정부 첫 국정기획수석)의 증언. “나도 747이 공약으론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어서 강하게 반대를 못했다. 그런데 홍보라인에서 747이란 용어 자체가 이미지가 좋다며 비전이자 공약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747이 이륙하는 보잉747기처럼 비상하는 한국 경제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후보도 홍보라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747 대한민국’은 공약으로 확정됐다.”
당시 747을 선거공약으로 주장한 홍보라인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기획팀장(부사장) 출신의 지승림 씨였다.
특별취재팀=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
■ 안국포럼
2007년 12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베이스 캠프. 이 대통령은 2006년 6월30일 서울시장직에서 퇴임하면서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서흥빌딩 11층에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여기에 ‘안국포럼(Anguk Forum)’이란 간판을 달았다. 이곳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이 후보의 대선 전략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싱크탱크였다. 안국포럼 구성원은 대부분 서울시청에서 근무했던 이춘식 정무부시장, 정두언 의원, 박영준 정무보좌역과 강만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등 이른바 ‘S(서울시) 라인’ 인사들이었다.
대선전이 본격화하면서 안국포럼은 정책공약 수립의 사령탑 역할도 했다. 캠프 외곽에 있던 백용호 교수·류우익 교수·윤건영 의원 그룹 등이 내놓은 정책 아이디어를 조율하고 공약으로 결정했다. 그 조정역을 강만수 원장이 주로 맡았다. 안국포럼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집권 후 청와대 요직을 맡거나 국회의원이 됐다.
2007년 3월1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만5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한 출정식에서 이 전 시장은 경제공약 비전으로 ‘대한민국 747’을 제시했다. 5년간의 대통령 임기 중 ‘연평균 7% 경제성장’을 달성해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의 ‘7대 경제강국’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반(反)시장정책에 피로감을 느끼던 국민들에게 이명박 후보의 ‘대한민국 747’은 비상하는 보잉747 점보기를 연상시키며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제대통령감’이란 이명박의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졌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747’은 이 후보의 대표 경제공약이 됐다. ‘이명박 경제정책=747’이란 등식도 성립했다. 이렇게 ‘MB노믹스’의 공식 브랜드가 된 ‘747 공약’은 사실 틀린 통계에서 비롯됐다.
○‘747’은 이륙하는 보잉기 연상
2006년 4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핵심 브레인으로 이 시장의 대선 출마를 돕던 강만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은 모 경제신문을 넘기다가 한 기사에 시선을 멈췄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가 됐다’는 기사였다. 강만수의 회고. “재정경제부가 분석한 2005년 기준 국가별 경제규모(GDP·국내총생산)에서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10위가 됐다는 보도를 봤다. 한국 앞엔 이탈리아(7위) 캐나다(8위) 스페인(9위)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올랐는데 경제라고 못할 게 있나.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7위 경제강국이 되는 걸 대선 공약 비전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강만수의 ‘7대 강국론’은 이명박 캠프 참모들의 손을 거쳐 ‘747’로 변신한다. 2005년 기준 명목GDP가 7930억달러인 한국이 2.2배인 이탈리아(1조7661억달러)를 따라잡으려면 단순 계산해 10년간 7%씩 성장해야 한다. 이렇게 성장하면 새 정부 집권(2008년) 10년 뒤인 2018년 한국의 GDP는 이탈리아를 앞질러 1조9000억달러에 도달한다. 이를 인구 4800만명(2005년 기준)으로 나눈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만달러가 된다. 747공약은 대략 이런 계산으로 탄생했다.
이 작업에는 채희율 경기대 교수와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채희율의 증언. “안국포럼(이명박 후보 캠프)에 있던 강 원장으로부터 747 공약의 근거와 달성 전략을 짜달라는 요청을 받아 작업했다. ‘글로벌 인사이트’라는 국제 전망기관의 나라별 중·장기 성장률 전망을 데이터로 삼았는데, 처음엔 숫자가 딱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물가상승률을 일부 조정해 숫자를 747로 맞췄다.”
그런데 이 공약의 근거가 됐던 2006년 4월27일자 신문 보도의 통계는 오류였다. 2005년 GDP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0위가 아니라 12위였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보면 GDP 규모로 7위 이탈리아, 8위 스페인, 9위 캐나다, 10위 인도, 11위 브라질에 이어 한국은 12위에 랭크돼 있었다. 당시 고속 성장하던 브릭스(BRICs) 국가인 인도와 브라질이 한국 앞에 있었다. 747 공약은 이렇게 잘못된 통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결함을 안고 있었다.
○MB가 홍보팀 손 들어줘
747 공약은 이명박 캠프 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빚었다. 캠프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증언. “강 원장을 비롯한 관료그룹에서 만들어온 747 공약에 대해 경제학자 그룹에선 반대가 심했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08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캠프의 정책은 강 원장이 이끈 관료그룹, 류우익 서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던 국제정책연구원(GSI), 백용호 교수가 조직한 바른정책연구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윤건영 한나라당 의원이 조직한 학자그룹 등에서 만들었다.
윤건영의 증언. “경제학 교수 출신 입장에서 4~5%의 잠재성장률을 가진 한국이 연간 7%씩 성장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봤다. 특히 한국처럼 민간 비중이 큰 나라에서 정부가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한다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설령 우리가 10년간 7%씩 성장한다고 해도 우리 앞에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거의 성장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어야 따라잡을 수 있다. 그게 가능하겠나.”
GSI를 이끈 류 교수도 747 공약에 반대했다. 류우익의 회고. “747 공약을 입안한 사람들은 당시 세계 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는 ‘문명사적 변혁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747이란 용어 자체를 쓰지 말자고 주장했다.”
747 공약을 둘러싼 캠프 내 논란을 잠재운 건 홍보라인이었다. GSI 정책팀장을 맡았던 당시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곽승준(이명박 정부 첫 국정기획수석)의 증언. “나도 747이 공약으론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어서 강하게 반대를 못했다. 그런데 홍보라인에서 747이란 용어 자체가 이미지가 좋다며 비전이자 공약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747이 이륙하는 보잉747기처럼 비상하는 한국 경제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후보도 홍보라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747 대한민국’은 공약으로 확정됐다.”
당시 747을 선거공약으로 주장한 홍보라인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기획팀장(부사장) 출신의 지승림 씨였다.
특별취재팀=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
■ 안국포럼
2007년 12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베이스 캠프. 이 대통령은 2006년 6월30일 서울시장직에서 퇴임하면서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서흥빌딩 11층에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여기에 ‘안국포럼(Anguk Forum)’이란 간판을 달았다. 이곳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이 후보의 대선 전략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싱크탱크였다. 안국포럼 구성원은 대부분 서울시청에서 근무했던 이춘식 정무부시장, 정두언 의원, 박영준 정무보좌역과 강만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등 이른바 ‘S(서울시) 라인’ 인사들이었다.
대선전이 본격화하면서 안국포럼은 정책공약 수립의 사령탑 역할도 했다. 캠프 외곽에 있던 백용호 교수·류우익 교수·윤건영 의원 그룹 등이 내놓은 정책 아이디어를 조율하고 공약으로 결정했다. 그 조정역을 강만수 원장이 주로 맡았다. 안국포럼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집권 후 청와대 요직을 맡거나 국회의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