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3주년 맞은 LH] '부채와의 전쟁' 3년…LH 다시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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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조 부채 줄여라"…뼈를 깎는 구조조정 단행
서민 주거안정 위해 올해 주택 7만가구 착공
서민 주거안정 위해 올해 주택 7만가구 착공
“전국적으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2010년 10월 말 경기 분당신도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날 LH 재무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125조원에 달하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38개 신규사업에 대해 구조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임원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보상이 시작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던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 뻔했다. 해당지역 국회의원들과 정권 실세들은 벌써부터 이지송 LH 사장에게 출신 지역 사업을 구조조정 대상에서 빼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장은 단호했다. LH와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예외없는 구조조정,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지었다. 건설업계는 이날의 결정이 LH를 살리는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한다. 110조원에 달하는 사업비 절감 또는 사업비 이연효과가 나타나면서 하루 이자만 100억원을 내던 LH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이자만 100억원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한 것은 2009년 10월1일이었다. 그러나 통합 초기부터 가시밭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125조원(2010년 말 기준)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부채였다. 하루 이자만 100억원씩 발생하고 있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채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점이었다. 2010년 91조원 수준이던 금융부채 규모는 2018년 225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파산할 것이 뻔했다. 이는 단순히 LH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 신용도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처럼 부채 규모가 늘어난 것은 자의반 타의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업을 벌인 탓이다. 국민임대주택건설 세종시건설 혁신도시건설 보금자리주택건설 등 과도한 국책사업을 떠맡으면서 빚이 급증했다. 통합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주공과 토공이 무차별적으로 택지개발사업을 벌인 것도 부채 규모를 키웠다. LH 관계자는 “LH 사업의 평균 투자기간은 7년, 회수기간은 12년”이라며 “초기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지만 회수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구조여서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부채와의 전쟁 3년
통합 공사의 사령탑을 맡은 이 사장은 LH의 재무구조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판단했다. 때문에 지난 3년은 부채와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장은 통합 공사 출범과 동시에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재무개선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부채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사업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사장은 외압과 주민 반발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고 설득 작업을 벌인 덕에 큰 저항 없이 사업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땅 판매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1인 1자산 판매운동’을 전개하고, 공기업으로는 드물게 투자설명회 개최, 가두캠페인 등 다양한 판촉활동을 벌였다.
내부적으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전 직원이 임금 10%를 반납했다. 1·2급 이상 직원 75%를 물갈이하고 인력감축도 시행했다. 고유 목적 이외의 사업도 정리했다. 원가 10% 절감을 위해 불필요한 지출도 줄였다. 현장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본사 인력 25%인 500여명을 지역본부로 전진배치했다. 7개월 만에 주공·토공의 경영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등 양사의 화학적 통합도 조기에 마무리지었다.
정부와 국회도 힘을 보탰다. 임대주택건설 산업단지조성 등 공익사업에 대한 손실보전 방안을 통과시켜 LH의 채권 발행이 원활하도록 조치했다. 그 덕에 LH 채권의 위험 가중치가 20%에서 0%로 낮아지면서 국채 수준의 신용도를 확보했다.
효과는 작년부터 나타나고 있다. 부채 증가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작년 금융부채 규모는 모두 97조7000억원. 이전연도에 비해 7조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통합 직전 안진회계법인은 2011년 한 해 동안 금융부채가 20조원 늘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LH는 2016년부터는 금융부채 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38개 사업지구에 대한 구조조정 효과는 110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사업비가 70조원가량 축소되고, 40조원 규모의 사업비 이연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사적인 토지 판매 활동 덕에 작년 매출은 15조원으로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공공 역할 확대
부채와의 전쟁에서 한숨을 돌린 LH는 작년 하반기부터 본연의 업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민주거 안정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택 착공과 공사 발주 물량을 늘리고 있다. 2010년 1만6000가구였던 주택 착공건수를 작년 6만3000가구로 늘린 데 이어 올해는 7만1000가구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등 맞춤형 임대주택 공급도 작년보다 1만가구 이상 늘려 서민 전월세난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3000개의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했다. 실버사원 2000명과 신입·청년인턴 사원 500명을 채용했다. 이 사장은 “지난 3년간의 결단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LH 백년대계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