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무더위도 지나가고 산책의 계절 가을이 왔다. 먼 곳으로 산행을 떠날 여유가 없는 직장인, 긴 코스가 걱정되는 어르신, 아이들을 떼놓을 수 없는 엄마 등에게 온가족이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도심 속 산책로는 짧은 가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도심에서 자연을 만나는 방법(your Best Way to nature)’을 주제로 코오롱스포츠와 여성환경연대 전문가들이 공동 개발한 ‘그린 트레일’ 프로젝트는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도심 속 산책로를 소개한다.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 있는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가기 쉽게 알려주자는 취지다. 1회로 부암동, 북촌, 상수동을, 2회엔 남산, 사직동, 성북동을, 3회엔 강동과 은평 코스를 소개했다. 이번 달엔 서울 강북구와 영등포구의 숨겨진 산책로를 걸어보자.

◆북한산과 화계사를 한눈에…강북구

강북구 코스는 서울에서 가장 공기가 좋다는 북한산을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다. 경사가 거의 없는 북한산 둘레길과 향 깊은 커피를 내려주는 커피숍은 도심 속에서 느끼기 어려운 여유를 안겨줄 것이다.

코스는 ‘4·19 탑’에서 시작된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 1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강북 01번을 타고 4·19 탑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4·19 묘지는 4·19 혁명 때 희생된 민주열사를 기리는 묘역으로 잔디광장과 연못, 기념관, 탑 등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역사 공부까지 겸할 수 있다.

이곳으로 나와 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걷다보면 ‘삼각산 재미난 학교’와 ‘재미난 카페’가 나온다. 난나 청소년 수련원에서 횡단보도 왼쪽 길로 건너면 50m 앞에 ‘갤러리 자작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골목 귀퉁이에 아담하게 마련된 갤러리로, 임순례 감독의 영화 ‘미안해, 고마워’ 촬영지다.

갤러리에서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전광수 커피’가 나오고 둘레길 탐방안내센터를 지나 통일교육원 가기 직전 왼쪽 길로 들어서면 북한산 둘레길의 3구간인 흰구름길이 나온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북한산의 좋은 공기를 듬뿍 마신 뒤엔 현인 노인전문병원 왼쪽에 있는 마을 찻집 ‘마주이야기’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마주이야기는 커피는 물론 주인이 직접 만든 차와 다양한 건강 간식을 즐길 수 있는 유기농 찻집이다. 탁 트여 있는 창문으로는 텃밭이 있는 마당을 볼 수 있고 비누, 로션, 지갑 등 손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아이템을 구입할 수도 있다.

마주이야기에서 나와 직진해 놀이터, 항아리집, 심안상사와 주차장을 지나 세 갈래 길에서 중간 길로 들어서면 마을버스 기도원입구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가 화성산장, 육각정, 공터를 지나면 용봉 배드민턴장이 나온다. 두갈래 길에서 계단이 있는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화계사를 만날 수 있다.

1523년(중종 17년)에 신월 스님이 창건한 화계사는 1618년(광해군 10년)에 불이 나 전소된 뒤 이듬해 도월 스님이 중건했고, 1866년(고종 3년) 용선 스님과 범운 스님이 흥선대원군의 시주로 중수한 절이다.

화계사를 나와 화계중학교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지나면 이 코스의 마지막인 ‘행복커피’를 만날 수 있다. 주인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손으로 내려준다. 야외공간이 있고 다양한 그림을 전시하는 카페로 유명하다. 강북구 코스는 3시간이면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생태공원· 문화공간의 어울림…영등포구

영등포구 코스는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과 문래동 창작촌을 둘러보는 산책로다. 생태연못, 해오라기 숲 등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 대안학교와 창작예술가들의 공간이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영등포구 코스는 지하철 1·5호선 신길역 2번 출구에서 보이는 샛강 다리에서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 계단으로 내려가면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을 만날 수 있는데 생태연못과 해오라기 숲 등 둘러볼 곳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 좋다. 갈대와 물억새가 무성한 이곳은 총 6㎞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자연을 해치지 않기 위해 벤치와 매점, 가로등도 설치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300m가량 걸어 다리를 건너 국회 대로 사거리에서 와우(WOW) TV 방향으로 파천교를 건넌다.

굴다리를 지나 걷다보면 여성미래센터 ‘바오밥나무 사회공헌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입주한 여성미래센터에서 운영하는 카페로, 직접 볶아서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수익금은 사회단체에 기부한다.

카페를 나와 GS주유소, 공원을 지나면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가 1999년에 만든 청소년 학습공간 ‘하자센터’가 나온다. ‘카페 그래서’ ‘하하허허 목공방’을 지나면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영등포 청과시장이 나온다.

김안과 사거리에서 신동아 아파트와 해태 아파트 쪽으로 걷다보면 영등포 타임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좋고, 계속 문래동 쪽으로 가면서 예술가들의 흔적을 맛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문래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자이 아파트 나무길을 따라 가면 지하철 2호선 문래역이 나오고 좀 더 걷다 보면 문래 창작촌을 볼 수 있다. 문래동 예술 공장 화살표를 따라 가면 예술 공단이 등장한다.

문래동 철재상가 등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50여개 스튜디오를 만든 것이 문래동 예술 공단이다.

130여명의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골목 사이사이마다 독특한 디자인의 간판과 그림을 만날 수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곳이다.

동방 당구장 건물에 있는 문래 옥상텃밭은 여성환경연대가 (주)아비노와 함께 만든 곳이다. 지난해부터 문래동 지역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싱싱한 옥상 채소들을 감상한 뒤 지하에 있는 대안공간 ‘문’을 들러보자.

이곳은 문래예술창작촌의 예술단체 ‘보노보C’가 운영하는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전시와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 근처에 있는 ‘이포 갤러리’와 카페 ‘솜씨’에서도 다양한 전시회가 열린다. 영등포구 산책을 마무리하기 좋은 장소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