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가 27일(현지시간) 내년 정부지출을 올해보다 400억유로 줄이는 내용을 포함한 예산안을 발표했다. 전날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개혁을 위해서는 스페인 사회 모든 영역의 희생이 필요하다”며 긴축재정과 경제개혁 의지를 재확인한 데 이어 나온 조치다. 이날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시민이 전날에 이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라호이 “국민 희생 필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이날 내년 정부지출을 올해보다 400억유로(8.9%) 줄이는 내용을 포함한 예산안을 발표했다. 이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0.77%에 해당되는 규모다. 스페인은 이를 통해 내년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4.5%로 맞추겠다고 했다. 올해 이 비율은 6.3%로 예상했다.

소라야 사엔스 데 산타마리아 부총리는 내각회의를 끝낸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예산안이 스페인이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스페인이 혹독한 예산안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앞서 라호이 총리는 긴축정책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찾은 라호이 총리는 소사이어티오브아메리카스 초청 강연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재정적자를 줄이고 노동개혁과 시장개방을 통해 경제를 탄력적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일 재정위기국 단기 국채 무제한 매입 조치를 발표하며, 국채 매입을 원하는 국가는 먼저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유럽연합(EU)이 제시하는 엄격한 긴축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라호이 총리는 이날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 긴축정책을 포함시켜 자체적인 경제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알아서 긴축을 할 테니 EU는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EU가 스페인의 자체 긴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라호이 총리는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ECB가 국채를 매입할 수 없어 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라호이 총리는 WSJ와 인터뷰에서 “스페인 국채 금리가 너무 오랫동안, 너무 높이 유지돼 경제에 타격을 주고 정부의 부채 부담이 증가하면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구제금융을 가능한 한 늦추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외부에서도 ‘흔들기’

한편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등 ‘매파(강경파)’ 3개국 재무장관은 전날 회담을 갖고 “스페인이 받을 1000억유로 은행권 구제금융 상환 책임을 스페인 정부가 져야 한다”고 주장해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지난 6월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은행권의 부실이 정부와 연결돼선 안 된다”고 합의했다. 시장에서는 합의문을 근거로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을 갚을 책임을 스페인 정부가 지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독일 등 3개국 재무장관은 이를 부정한 것이다.

독일 등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스페인의 국가부채가 1000억유로 늘어나는 셈이 된다. 지난해 말 기준 스페인의 국가부채는 약 7350억유로로 GDP의 68.5%에 이른다.

‘내우외환’ 속에 28일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 결과가 공개된다.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은 “은행권을 위해 필요한 돈은 600억유로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구제금융으로 받을 1000억유로로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산티아고 로페스 BNP파리바 애널리스트는 “스페인 정부는 자국 은행권의 상태에 대해 여러 번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며 “어떤 결과가 공개되든 시장을 안심시키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