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통화는 물론 인터넷에 접속해 동영상까지 볼 수 있는 3세대 이동통신 3G의 강자는 스웨덴의 노키아였다. 노키아는 2002년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폴더형 3G 단말기 6650을 선보이며 세계 최초로 3G 기업이 됐다. 그러나 노키아의 3G 혁신은 처절한 패배를 맛봐야 했다. 급기야 기업의 존망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애플의 아이폰은 노키아 6650보다 5년 늦은 2007년에 나왔다. 단말기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빼어났지만 통신 성능은 한참 떨어졌다. 3G 혁명이 시작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2G를 달고 나왔고, 나라별로 한 통신사에서만 개통 가능하다는 제약도 있었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아이폰에 열광했으며,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노키아의 추락과 애플의 성공을 가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보더라도 틀림없는 혁신임에도 어떤 것은 성공하고 다른 어떤 것은 실패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론 애드너 미 터크경영대학원 교수의 《혁신은 천개의 가닥으로 이어져 있다》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저자는 기업과 기술, 제품을 둘러싼 ‘혁신 생태계’를 주목한다. 애플은 적절히 활용했지만, 노키아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게 이 혁신 생태계란 것이다.

저자는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경쟁자보다 덜 혁신적이거나 혁신 프로젝트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생태계를 함께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상호의존적인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기만 최초, 최고가 되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거나 해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2G 시대의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혁신 공식에서 벗어나, 혁신을 생태계 관점에서 보고 그 안에서 역할을 재정비할 것을 제안한다. 소비자는 ‘최초의 제품’ ‘더 나은 기술’이 아닌 ‘더 편한 해결책’을 원하는 만큼 전체 생태계를 고려해 혁신의 이점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아 실패한 여러 혁신 사례가 나온다. 미쉐린의 ‘런 플랫 타이어’ 개발이 대표적이다. 타이어 산업 세계 1위 기업인 미쉐린은 1998년 펑크가 난 상태로 200㎞를 달릴 수 있는 런 플랫 타이어를 개발했다. 타이어 펑크에 따른 위험과 불편을 없앨 수 있는 혁신이었다. 미쉐린은 타이어를 재발명했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쉐린은 2007년 런 플랫 타이어 추가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값비싼 런 플랫 타이어를 제대로 보수하고 교체해줄 정비망을 갖추지 못해 소비자 민원이 쏟아졌던 것.

필립스전자의 HD TV 개발 사례도 그렇다. 1980년대 필립스전자가 맞닥뜨린 HD TV 재난은 화질이 떨어지는 불량 HD TV를 개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HD TV 카메라와 전송표준이 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TV만 개발했다. 그게 필립스전자가 25억달러에 이르는 자산가치를 허공에 날린 요인이었다.

미국 전자책 리더기 시장에서 소니의 실패와 아마존의 성공도 생태계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소니는 전자책 시장의 핵심 참여자인 출판사를 자기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콘텐츠를 갖고 있는 출판사들은 저작권 관리에 문제를 제기하며 서점에서 종이책을 파는 현상유지를 선호했다. 2007년 킨들을 내놓은 아마존은 달랐다. 킨들의 콘텐츠 플랫폼은 대단히 폐쇄적이다. 아마존에서만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고 구매한 책은 다른 기기로 전송하고 나눠 볼 수 없게 함으로써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것. 전자책 가치 창출에 필요한 요소를 한데 모으는 통합자로서 아마존의 역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누구나 폭넓은 혁신 생태계에 속한 하나의 행위자”라고 거듭 강조한다. “혼자 잘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의존관계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를 도외시하면 아무리 뛰어난 기업도 기습 공격을 당할 수 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