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 인수·합병(M&A)을 통해 ‘공룡’으로 거듭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키워 라이벌 기업들을 멀찍이 떼어놓겠다는 의도다. 주가 하락으로 예전에 비해 인수비용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M&A가 늘어난 배경이다. 불황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지는 요즘, 기업들의 덩치 키우기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신일본제철·스미토모금속 통합…단숨에 세계 2위

일본 내 최대 철강회사인 신일본제철과 3위 업체 스미토모금속이 지난 1일 공식 합병했다. 작년 기준 신일본제철의 철강 생산량은 연 3340만t으로 세계 6위, 스미토모는 1270만t으로 27위였다. 합병회사의 철강 생산량은 연 4600만t을 넘어 아르셀로미탈(9720만t)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서게 된다. 중국 허베이강철(4440만t)과 바오산강철(4330만t), 한국 포스코(3910만t) 등을 제친다.

합병 회사명은 신일철스미킨이다. 합병은 스미토모 1주당 신일본제철 0.7주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08년 주당 400엔을 웃돌던 스미토모 주가는 최근 100엔대로 낮아졌다. 일본 철강업계의 대형 M&A는 2002년 일본 2위의 JFE홀딩스(가와사키제철과 NKK의 합병회사)가 출범한 이후 10년 만이다. 신일철스미토모는 5~10년 내 연간 철강 생산량을 6000만~7000만t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일본 철강업체들은 최근 2~3년 새 M&A를 통해 규모를 키운 중국 철강업체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는 이번 합병을 계기로 해외 시장 확대와 원가 절감, 상호 보유 기술 공유 등을 통해 떨어진 수출경쟁력을 회복한다는 전략이다.

소프트뱅크의 공격본능…라이벌 이액세스 삼켜

일본 내 3위 이동통신업체인 소프트뱅크가 2일 경쟁업체인 이액세스(e-access)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사진)은 “일본 내 4위인 이액세스를 주식 교환 방식으로 사들여 내년 2월까지 자회사로 흡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액세스 주식 한 주당 소프트뱅크 주식 16.74주를 할당하는 방식이다. 총 인수금액은 1800억엔(약 2조5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내년 2월 말 주식 교환이 마무리되면 이액세스는 상장폐지된다.

소프트뱅크의 휴대폰 가입자 수는 3014만명(이하 8월 말 기준)이다. 420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이액세스와 합치면 3434만명으로 늘어나 2위 업체인 KDDI(3588만명)를 바짝 뒤쫓는다.

최근 발매를 시작한 ‘아이폰5’가 소프트뱅크의 공격 본능을 일깨웠다. 올 들어 아이폰에 대한 소프트뱅크의 독점 판매권이 허물어지면서 지난달에만 9만여명의 가입자가 소프트뱅크에서 KDDI로 이동했다. 이액세스의 통신망을 활용, 통화 품질에 대한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손 사장은 2006년 일본 내 3위 이동통신사였던 보다폰재팬을 사들이고, 미국 야후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등 공격적 M&A로 꾸준히 덩치를 키워왔다.

글렌코어-엑스트라타 100조원 기업 탄생 합의

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업체 글렌코어와 대형 광산업체 엑스트라타가 합병을 위한 새로운 조건에 합의했다고 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엑스트라타 이사회는 이날 글렌코어가 수정 제안한 330억달러(약 36조7000억원) 규모의 인수·합병안에 찬성 투표할 것을 주주들에게 권고했다. 두 업체 모두 스위스 기업이다. 두 회사가 합치면 기업가치가 900억달러(약 100조원) 수준에 이른다.

엑스트라타의 최대주주인 카타르 국부펀드 소유 카타르홀딩 등은 종전의 합의 조건이 엑스트라타의 가치를 저평가했다며 더 나은 조건을 요구했다. 이에 글렌코어는 지난달 엑스트라타 주식 1주당 글렌코어 주식 교환 비율을 2.8주에서 3.05주로 높이겠다고 제안했고, 양사는 이 조건에 합의했다. 지난 2월 엑스트라타 주가에 17.6%의 프리미엄이 더해지는 셈이다.

엑스트라타 이사회는 경영진이 회사에 계속 남도록 많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데 찬성해줄 것을 주주들에게 요청했다. 존 본드 엑스트라타 이사회 의장은 “합병안과 경영진 잔류 방안에 대한 표결을 따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2007년 호주의 리오틴토가 캐나다의 알칸을 380억달러에 인수한 이후 광산업계 최대 거래가 된다.

3M, 세라믹업체 인수…방위산업 시장 진출

미국 사무용품업체 3M이 세라믹업체를 인수한다. 소재사업 부문 확장을 통해 유럽발 불황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블룸버그통신은 3M이 미국 세라믹업체 세라딘을 부채 1억9000만달러를 포함, 총 8억6000만달러(주당 35달러)에 인수키로 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3M은 연말께 인수절차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3M은 이번 M&A로 내열소재, 항공우주산업을 비롯해 방위산업까지 사업영역을 넓히게 됐다. 세라딘은 1967년 설립된 세라믹 소재업체로 작년 매출은 5억7200만달러에 달한다. 방위산업 매출 비중은 39%이고 내열소재 비중은 29%에 달한다.

3M은 최근 글로벌 불황 돌파 전략으로 ‘몸집 불리기’를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3M은 이번 세라딘 인수 외에도 올 들어 소재사업 부문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초 미국의 사무용품 및 특수화학원료 업체 에이버리데니슨을 5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잉게 툴린 3M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경기불황 돌파를 위해서는 회사의 크기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강동균/임기훈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