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택 한글학회 회장 인터뷰

"드라마 '대장금'도,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도 그 바탕에는 한글문화가 있습니다."

한글학회 회장인 김종택 경북대 명예교수는 "오늘날 한국이 문화 선진국이 되고 한류 열풍이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바탕에는 한글문화가 있다"면서 "노래 가사를 짓고, 드라마와 영화 대본을 창조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한글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한글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한글로 문화를 창조하는 등 한글은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밑바탕이 됐습니다.공부를 많이 안 해도, 초등학교, 중학교만 나와도 감수성이 뛰어나면 얼마든지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 작품과 노래 가사를 한글로 쓸 수 있습니다.그리스 문명이 고대 서양 문명의 중심이 된 것도, 로마 문명이 중세 천 년의 제국을 건설한 것도, 근대 영미 문명이 세계를 지배한 것도 모두 문자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한글날을 앞두고 지난 2일 종로구 신문로 한글학회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에게 이번 한글날은 더욱 특별하다.

올해는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 사건 7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1942년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조선말 큰사전' 편찬 사업을 주도한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민족의식을 고양했다는 죄목으로 탄압하고 투옥한 사건을 말한다.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등 조선어학회 학자 33명이 일제에 검거돼 커다란 고초를 겪었으며 이 중 이윤재, 한징은 옥중에서 사망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 2세대 만에 선진국이 된 것은 조선어학회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서 한글을 현대화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선열들을 잊고 살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말을 지키려고 조선어학회 선열들이 옥고를 치르고 불구자가 되고 목숨까지도 바쳤는데 기념사업은커녕 비석 하나 없습니다.조선어학회 선열들을 기리는 추모탑이 올해 세종로에 착공되는 데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한글학회는 조선어학회 사건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오는 12일에는 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조선어학회 항일 투쟁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학술대회를 연다.

또 이날 외래어와 비속어의 범람 속에 위기에 빠진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한글과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국내 우리말 단체들을 한데 모아 한국어문학술단체연합회를 창립할 예정이다.

조선어학회의 항일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어항일투쟁사'도 펴낼 계획이다.

한글학회는 또 최근 한글단체들과 연대해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청원서를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김 회장은 "한글날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국경일"이라면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한글 말하기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세계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5월15일 세종대왕 탄신일 역시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성탄절, 부처님오신날 등 다른 나라 위인들의 생일은 기리면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탄신일은 달력에 표시조차 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김 회장은 "중국, 몽골 등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붐이 일고 있다"면서 "앞으로 10년 뒤에는 한국어를 아는 것이 큰 자랑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류 열풍 역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앞으로 100년, 1천 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최근 드라마 '차칸남자' 제목 소동과 관련해 "공영방송에서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표현을 드라마 제목으로 쓰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모두 따라 하게 된다"면서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KBS 2TV의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는 드라마 제목 때문에 '한글파괴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KBS는 논란이 거세지자 한글학회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드라마 제목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로 바꿨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yunzh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