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방음벽 없는 세종시 콘셉을 고집하다가 320억원의 예산을 낭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방음시설 시공업체에 부당한 각서까지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행복청이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민주당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행복청은 2007년초 도시기반시설 설계부터 세종시를 공원같은 명품도시로 만들겠다며 고속도로변 등에 담장같은 방음벽 대신 저소음 포장재만 사용토록 했다. 이 포장재는 주로 첫마을 2단계 인접 국도 1호선과 대전-당진 고속도로변 등의 공사에 설치됐다. 그러나 이 구간에 교통량이 늘어났고 2007년~지난 2월까지 실시한 4차례 측정에서도 기준치인 주간 65㏈(데시벨), 야간 55㏈를 모두 웃돌았다. 이처럼 소음이 증가했지만 행복청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첫마을 2단계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방음벽 설치를 해달라며 집단 민원과 1인시위 등을 벌였다. 결국 행복청은 대전-당진 고속도로 방음벽 150억원, 국도 1호선 방음벽 25억원 등 무려 320여 억원의 예산을 추가했다.

행복청이 계획에 없던 방음공사를 급하게 벌이면서 발주처인 LH가 도급업체에 희생을 강요한 부분도 지적됐다.

LH는 첫마을 2단계 입주에 맞춰 오는 11월 준공예정인 방음시설 공사를 지난달까지 끝내라는 지시를 포스코 건설에 내렸다. LH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방음판 성능인증과 시공을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LH는 ‘성능인증을 득하지 못할 경우 자재를 전량회수하고 재시공하겠다’는 각서를 포스코에 쓰도록 했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이미 시공 중인 방음판이 성능인증에서 탈락하자 포스코는 각서의 내용대로 재시공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행복청의 잘못된 판단으로 공기 지연으로 인한 예산 추가와 입주민들의 소음 불편이 가중됐다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박 의원은 “첫마을 2단계 아파트 방음공사로 인한 일련의 소동의 책임은 LH뿐만 아니라 관리감독청인 행복청에 있다”며 “첫마을 아파트가 가장 먼저 입주를 시작한 만큼 세종시의 소음 문제가 계속 발생할 우려가 있어 관리감독청인 행복청은 이번 사건 해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시급히 원인을 재진단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