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구글의 말·말·말…
구글의 자회사인 모토로라모빌리티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했던 애플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을 취하했다. 외신들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당장 구글과 애플 사이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게 아니냐는 해석부터 나온다. 구글은 “애플과 별도로 합의한 바 없다”며 “앞으로도 안드로이드 진영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애플 간 미국 내 특허소송에서 애플에 승리를 안겨준 배심원단 평결이 나왔을 때도 그런 루머가 돌았었다. 지난 8월 말에는 구글과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구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게 됐다.

구글이 '혁신'을 대표한다고?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또 방한했다. 이번에 와서는 “구글은 특허소송이 아닌 혁신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삼성-애플 특허분쟁을 놓고 애플을 겨냥한 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말은 멋있게 들려도 왠지 공허한 느낌이다. 경쟁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특허소송’과 ‘혁신’을 무 자르듯 구분 짓는 게 과연 가능한지. 더구나 특허소송을 혁신의 대척점에 놓는 건 특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특허소송으로 고달픈 안드로이드 진영 제조사들을 다독거릴 목적에서 해 본 소리면 또 모르겠지만.

정작 삼성에 패배를 안겨준 미국 배심원단 평결 때 구글의 논평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소송은 안드로이드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안드로이드 가 아니라 삼성의 특허 침해가 문제였다는 얘기다. 이 말 자체는 맞다. 그러나 그 안드로이드가 특허소송의 출발점이 됐다는 사실을 구글이 모를 리 없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운영체제인 iOS를 모방했다고 흥분했던 게 바로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를 선택한 제조사에 대한 애플의 공격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그런 구글도 막상 칼끝이 자신을 겨누자 다급해진 모양이다. 애플 공격은 이미 구글이라는 중심을 향하고 있다. 구글폰으로 불리는 삼성의 갤럭시넥서스에 대한 소송이 바로 그렇다. 특허침해 대상이 안드로이드 본질에 직결돼 있다. 구글로서는 직접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글과 애플의 화해설 등장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오픈' 특허분쟁 면책 안돼

우리는 여기서 불편한 진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구글은 ‘개방형 생태계’를 강조해 왔다. 안드로이드는 그 상징이다. ‘오픈(open)’이라는 이름으로 제조사에 무료로 제공됐다. 애플의 폐쇄성과는 대조적인 구글의 개방성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 안드로이드도 특허분쟁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오라클의 구글 제소건이 이미 이를 말해준 바 있다. 어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도 특허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오픈’은 결코 ‘내 맘대로’도 아니요, ‘공짜’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불편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무료’와 ‘개방’ 전략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을 확장했다. 구글 회장은 한국에 올 때마다 안드로이드에 베팅한 삼성의 놀라운 성과를 칭송한다. 하지만 구글도 가입자 확장으로 광고수입 등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시가총액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친 구글이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위했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오픈’도 결국 ‘자기 이익(self-interest)’ 극대화의 수단일 뿐이다. 이제 전 세계 이목은 구글이 안드로이드의 특허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쏠리고 있다. 구글은 “사악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이 구글이 남들에게 사악하지 말라는 건지, 남들이 구글에게 사악하지 말라는 건지 판가름날 순간이 다가왔다.

안현실 < 논설·전문 위원 경영과학 博 ahs@hankyung.com >